그냥 분량이 많아야 한다. 미친듯이 많이 해보면, 그 속에서 정렬되는 사소한 규칙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걷기든 글쓰기이든 뭐든간에 말이다. 음악을 많이 들어본 사람은 확실히 듣는 귀가 좋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좋은 소리가 나는 스피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뭐든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삶으로 쌓이게 된다.
입에서 나오는 말, 말투, 행동거지를 잘 살피다 보면 그 사람이 쌓아온 것들이 한 두 가지쯤은 보인다. 쟤는 식당에 들어갈 때도 허리를 굽혀서 신발을 가지런히 두는구나. 쌓인 것은 태도로 나오게 마련이다. 아마 본인은 모르겠지만, 쌓여온 것으로 태도가 만들어지고 그 태도가 삶을 살아가는데 영향을 미친다. 내가 차를 운전할 때마다 저거저거저거저거저저저저저~~ 비난하는 태도들도 나는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몸에 쌓여있다.
글쓰기를 일상으로 들여온지도 11년 정도 된 것 같다. 매일매일 썼던 것은 일기가 아닌 생각정리였다. 내가 쓴 글을 어디에 기고한 적도 없고 밥벌이를 한 적도 없다. 에세이로 책을 낸 적도 없다. 나는 글쟁이가 아니라 그냥 글쓰기가 생활인 사람이다. 아니, 글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생각을 글로 적으면서 삶의 문제나 할 일을 정리하고 혼자서 다양한 의견을 내어 노트 속에서 치열한 논쟁을 펼치는 사람이다. 노트와 단 둘이 회의를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생각이 꼬이면 글로 풀어내기를 11년이나 해왔다.
그래서 글로 생각하기는 사실 어렵지 않다. 생각을 글로 쓰기만 하면 된다. 이 첫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막막해 하지만, 실제로는 너무 놀랍도록 간단하다. 머리에 떠오른 이미지를 쓰면 된다. ‘뭐쓰지..’라고 생각하면 노트에 “뭐 쓰지”라고 쓰면 된다. 그리고 그 다음 문장은 앞의 문장에 대한 내용으로 확장해 나가는 거다. 그 후로는 글과 내가 함께하는 모험이 된다. 어디로 갈지 그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디로 간다한들 상관 없다. 그냥 이걸 질릴정도로 많이 하다보면 그것만으로 글쓰기의 디테일을 발견하게 된다.
에전에 쓴 문장을 읽으면 나는 그 때 그 순간으로 생각이 이동한다. 이때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 당시 나의 생각과 상태도 파악이 가능하다. 이런 모자란놈 이런 생각이나 하고 말야. 호통을 칠 때도 있지만, 보통은 내 글에 나도 놀라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생각을 쌓아오면서 살았구나.
머릿속에만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발전시키는 속도는 노트로 남기는 것보다 절대 빠를 수 없다. 생각이 글로 쌓이면 내 생각도 오랜 시간에 걸쳐 정렬이 된다. 사소한 규칙들도 생기고 어떤 사안에 대해 입장도 생기게 된다. 생각이 깊다, 글을 잘 쓴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생각하고 기록하는 걸 그냥 되게 오래 해온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