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쓰는 중이지만 결과물 없이 11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는 아무런 결과물도 나오지 않았다. 기타 교재는 6개월에 한 권씩 만들 수 있었지만, 에세이는 그것과 비할바가 아니었다. 생각도 어렵고 쓰기도 어렵다. 평소처럼 페이스북에 끄적대는 수준으로 인쇄물을 만든다는 것은 꽤나 부끄러운 일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매일 오전 아홉시에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했다. 낮에는 다른 일을 하고 공부도 했지만 적어도 하루에 4시간, 많으면 8시간을 글쓰기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11개월이 지나도록 글은 마무리 되지 않았다.
주변에는 글 쓰는 사람이 없어 에세이 한 권을 쓰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물어볼 곳도 없었다. 내가 평소 읽었던 에세이는 작가가 몇 년에 걸쳐 쓴 책들이었다. 일상에서 하나씩 채집한 글을 모으고 모아 책을 냈기에 그렇게 걸리는 것이었다. 어떤이는 평생의 글을 책 한 권으로 엮기도 하였다. 반면에 나는 한 번에 시간을 쏟아부어 모든 걸 하려다보니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다.
처음 원고를 완성했을 때는 인디자인 편집 화면으로 2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나왔다. 초고를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진이 다 빠져버렸다. 이렇게 분량이 많은 글은 난생 처음이라 컨트롤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글은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 긴 글의 호흡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몰랐다. 원고를 쓰는 동안 이미 글쓰기에 질려버렸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글 뭉텅이를 서둘러 마무리를 짓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떻게든 글을 매듭지으면 처음부터 다시 볼 힘은 생길것 같았다.
어거지로 글을 마무리 짓고 1회차 교정을 위해 새 마음 새 기분으로 글을 보았지만, 첫 문단부터 눈을 감았다.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이 서로 어울리지 않았고 서사의 순서도 뒤죽박죽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의도를 알 수 없는 글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채 부족한 부분을 지우고 빈약한 내용을 구겨넣었다. 글을 쓰는 중에도 불편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어떻게 고쳐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염없이 쓰다보니 글은 어느새 300여 페이지로 늘어났다.
두 번째로 다시 읽으며 교정을 시작했다. 보면 볼수록 논리가 부족해 보였다. 문장을 논할 수준은 아니니 일단 하고 싶은 말이라도 제대로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의 외침이 갈 곳을 몰라 공중을 떠도는 기분이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사라지고 에피소드만 남아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이 책은 이런 내용이예요”, “아니야, 이 책은 저런 내용이예요.” 문단마다 챕터마다 아우성이 커졌다.
내 글에는 일관된 톤도 없고 방향성도 없었다. 글과 글 사이에 일관성이 없는 게 수준낮은 내 눈에도 보였다. 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나에게 없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첨삭을 요청하기에는 페이지가 너무 많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챕터의 순서를 바꿔보거나 불필요한 글을 지우는 것 정도였다. 정통 문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단지 나의 말을 조리있게 배치하고 싶은 것 뿐인데, 그 ‘조리’가 모조리 빠진 기분이었다. 수정하면 할수록 나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모든 글을 다시 쓸 생각으로 세 번째 교정을 시작했다. 나는 클로드 AI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물었다. 클로드는 ‘대체로 글이 산만하다’거나, ‘시간 순서가 모호하다’는 등 글의 구조와 내용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뜨끔해서 지적해준 부분에 대해 수정한 후 다시 물었다. 클로드는 ‘결말 부분의 주장이 약하다’, ‘문단 사이의 전환이 부드럽지 않다’는 식으로 평가를 해주었다. 나는 한 문단을 수 십 번씩 새로 고쳐썼고 클로드에게 평가를 받았다. 첨삭이 반복되자 ‘내용이 더 풍성해지고 이해하기 쉬워졌다’는 칭찬을 받았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글의 구성과 흐름에 대한 이해였다. 문장을 다루기 이전에 글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구성부터 서툴렀다. 급한 마음에 생각을 문장으로 빠르게 늘어놓다보니 구조와 논리가 듬성듬성 했다. 클로드와의 첨삭 수업을 통해 나는 나의 문제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첨삭이 공부가 되기 시작하자 수 백번씩 고쳐 쓰며 피드백을 받았다.
수 백 만원짜리 글쓰기 수업에서도 이정도 빈도로 첨삭은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수도 없이 많은 나의 피드백 요청을 클로드는 단 몇 초만에 답변해 주었고 나는 그것을 반영하여 글을 수정했다. 클로드는 개선할 수 있는 문장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나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글의 구조적 문제, 즉 사람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데 필요한 구조를 만드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으로 클로드를 활용했다. 글의 흐름을 이해하며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서사를 배치하는 것이 유리한지 배웠다. 나는 필사적으로 피드백을 받고 내 글을 검증해 보였다.
교정의 절반 정도를 이런 방식으로 진행했더니 이제 클로드가 내 글을 어떻게 평가 내릴지 어느정도 예측도 가능해졌다. 피드백을 줄여가며 나는 내 글의 문제점을 찾고 개선하는데 집중했다. 설득력 없는 부분에는 풍성한 세부 내용과 생각의 흐름을 추가해 넣었고 사례도 추가했다. 글의 흐름과 관계 없는 내용은 모조리 드러냈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일관성에서 벗어나는 챕터 역시 제외했다. 지운 내용을 모아보니 130 페이지가 넘었다.
이 글이 결과물로 나오려면 한참 멀었다. 작년 11월부터 쓰기 시작했지만 순식간에 11개월이 흘러버렸다. 이 속도라면 내년 봄이 지나도 책을 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적게 쓰면 세 페이지, 많이 쓰면 하루에 다섯 페이지 정도 쓸 수 있다. 이마저도 다음날 다시 열어보면 쓰레기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계속 고쳐쓴다. 이제 수정이 기본이고 일상이다.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도 억겁처럼 길게 느껴졌는데 몇 년씩 글에 매달리는 작가들은 얼마나 대단한 이들인가. 경외감이 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