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지면 노화된걸까

2023년 10월 20일

이제는 노트에 글을 쓸때 눈에 초점이 잘 맞춰지지 않는다. 노안은 이렇게 급작스럽다. 별안간이라고 해도 될텐데 이 노트를 쓰던 불과 몇개월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모니터를 보고 작업할 땐 몰랐지만 지금은 노트에 연필로 직접 글을 적고 있으니 매일 느낄 수 있다. 누군가 모니터 작업을 오래하면 초점 거리가 굳어져서 더 빨리 노화된다고 했다. 초점을 잡는 게 일정해져서 그렇다는 설명. 그래서 사람은 무뎌지면 노화된걸까? 머리도 잘 안쓰면 잘 안돌아가는 법이고 운동도 안하면 근육량이 줄고 글도 안 쓰면 감을 잃는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떤 감각은 더 그런것 같다.

살면서 베이스 기타를 20년 쳤는데, 최근 몇 년 안 쳤다고 실력이 형편없어졌다. 원래 이렇게 못 쳤던걸까. 작년 12월에 베이스를 새로 구매하여 지난 10개월간 꾸준하게 연습을 했는데 최근에야 예전 감각을 찾게된 것 같다. 무려 10개월 만이다. 무뎌지면 일상처럼 했던 것들도 노화된다.

서로 우애하거나 사랑하는 것, 이해하고 존중하며 감싸주는 것, 하나라도 더 해주려는 마음,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존경, 겸손같은 것. 평소에 이런 것을 경험한지 오래됐다면 아마 우리는 이런 감정들조차 노화된걸지도 모른다. 현실에 치이고 비이성적인 상황도 맞닥뜨리고 억울한 삶이 지속된다면 우리 속에 그 어떤 철인이 들어 있다해도 그는 노쇠할 것이다. 그는 힘이 없을 것이고 연약하여 쉽게 예민해지고 거칠어지지만 누구보다 약해질 것이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도 노화될 수 있다. 혼자만 지내다 보면 어쩔수 없이 대화하는 방법이라든지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되는 지 모르게 될수도 있다. (내 얘긴가) 생각과는 다르게 말이 나오고 반가움의 제스쳐도 어색한 거다. 10개월의 연습 끝에 내 베이스기타 실력도 찾을 수 있었는데 이런 노쇠한 우리의 감각들은 회복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릴까. 매일매일 연습하기도 어렵고 사람들 귀찮게 쫓아다니기도 어렵다. 처음에는 스스로 고립되어도 나중에 감각이 노쇠하면 스스로는 벗어날수 없어 고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