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A를 들고다니기 시작한 게 2000년 초반이었을거다. 모르긴 몰라도 나는 그때부터 별의별 PDA폰을 다 들고 다녔고 그러면서 일정 조정이니 뭐니 하면서 의도적으로 PDA를 사용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때는 윈도우 컴퓨터와 연결도 제대로 안 되고 앱스토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사용하기 너무 어려웠다. 그저 신기한 힙스터의 장난감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로 별 쓸데는 없었다. 그걸로 수업 시간에 게임이나 했지.
이유가 있었다. PDA를 쓸만큼 내 삶은 오거나이징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PDA의 일정을 잘 활용하는게 문제가 아니었다. 내 삶에서 무언가를 기억하는 아날로그적 습관이 들어있지 않으니 일정이나 메모 입력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적어야 할 것을 적는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 매일 들고 다니지만 PDA는 그런면에서는 무쓸모였다.
PDA가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던 시절에도 아이폰3GS부터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관련 용품들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앱을 잘 활용하려면 아날로그적 습관이 필요했다. 내가 살면서 그런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그걸 만들어준 것은 글쓰기 연습을 하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아! 써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끔 습관이 드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후부터야 일정관리를 제대로 쓸 수 있었다. 채 몇 년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생각이 들면 메모를 해야겠다는 생각, 일정에 관한 이야기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면 자연스럽게 앱을 열어 일정을 변경하는데까지 정말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뜻이다. 삶이 바뀌니 그제서야 생산성이 오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3-40명씩 만나는 스케줄을 매주 진행 하는데 처음에는 엉망진창이어서 미안한 날이 많았다. 그러나 일정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관리 완성도가 높아졌다. 앱의 우수성 보다는 이미 삶 자체가 관련 프로세스대로 움직이고 있어야 앱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게 어디 일정뿐일까.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일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가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내 몸에 아날로그적으로 붙어있어야 된다. 안 그러면 각각의 특성대로 제작된 생산성 앱에 자신의 주관없이 이리저리 휘둘릴 뿐이다. 생산성 앱이 손에 잘 안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카테고라이징을 잘 하는 사람이 TODOLIST 관리도 잘 한다. 좋은 앱을 고르기 이전에 아날로그적으로 이미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2020년 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