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4월 24일.
책 살 때 받은 ‘올리버 색스의 저널’이라는 노트에 글을 쓰리라곤 처음엔 생각도 못했다. 보통 이런 노트는 번들이라서 버려지기 십상이다. 특히 이 노트 전체에 줄이 쳐져있는 것도 아니고 사이즈도 엄청 작고 기껏해야 낙서 정도나 하다가 어딘가에 휩쓸려 분리수거 되는게 운명일텐데 무심코 펼친 노트 위에 적힌 올리버 색스의 짧은 글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일하지 않고도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데 무엇을 위해 직장을 얻고 일을 해야 하는가? 나는 이렇게 말하는 래리의 용기와 솔직함이 좋았다.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독립적 인간, 일종의 현대판 소로(Hanry David Thoreau), 도시에 사는 소로였다.
짧은 문장에 담긴 정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노트 위쪽에 한 문단이나 될까, 그것도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 문장들이 눈에 밟혀서 이게 계속 읽어보고 싶은 것이다. 가방에 넣고 꺼내 읽으려고 가지고 다녔다. 차츰 노트에 정이 가기 시작했다. 원래 사용하던 노란 노트랑 색도 같다. 그래서 노트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냥 막. 아무렇게나 하나씩 아주 작은 주제를 가지고 무작정 글쓰기를 시작했다. 근데 벌써 이틀간 네 페이지. 우와 내가 네 페이지나 글을 쓰다니! 생각보다 노트에 글을 쓰는 것이 공간을 채워 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생각이 노트에 하나씩 주제를 가지고 정리가 되니 안정이 되는 느낌. 머릿속 생각 뭉치를 한 덩어리쯤은 떼어낸 느낌이라 머리가 더 가벼워 졌다.
해변의 카프카를 샀어. 무슨 내용인진 나도 몰라. 그냥 1Q84를 재밌게 읽었었거든. 하루키의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판타지적인데 앞으로 많이 읽어보고 싶어. 읽다보니 주인공이 눈에 보이더라. 살아있는 것처럼. 장면도, 인물의 생각도, 호흡까지도. 이젠 카프카를 읽어볼게.
이건 내가 첫 페이지에 적은 문장이다. 짧은 글인데 처음에는 이만큼 밖에 쓸 수 없었다.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고 뭘 써야하는지도 몰라서 생각난 것을 한줄 적었다. 그렇게 며칠 쓰다보니 주제 하나로 쓰는 글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한 바닥 넘어가는 글도 생기고 생각도 이리저리 잘 굴러간다. 쓰기는 읽기만큼 정신 건강에 도움 되는것 같다. 온전히 내가 아니면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내 삶에서도 글쓰기가 이제 막 시작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