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서 배우기

체계가 잡히지 않으면, 확실히 중구난방해진다. 그래서 적고 기록하는 걸 넘어 그걸 구체화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진짜 내 것이 된다. 내 삶을 기타를 치던 시절과 가르치던 시절로 나누어 본다면 나는 가르치던 시절에 더 많이 깨달았고 더 많이 배웠다. 만약 교재를 만들지 않았다면 아는 것도 늘지 않았을 것이며 기타 실력은 여전히 어중간했을 것이다. 가르치기 전에는 구체적인 이유도 모르고 치는 경우가 많았다. 연습하다보면 되는 것도 많았으므로 이유도 모른채 연주가 완성되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가르쳐 주어야 할 이유가 생기자 설명을 하기가 어려웠다. 설명을 하려면 구체적인 근거를 가져와 이해를 시켜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칠 줄만 알지 아는 게 없으니 설명이 될리 없다. 이럴때 사용되는 기적의 멘트가 바로 “연습하면 다 돼요.”다.

물론 연습을 하면 다 되는 것은 맞지만, 영문을 모른 채 연습하는 것과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를 알고 연습하는 것은 다르다. 연주의 개념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식을 응용하고 확장하기는 어려워진다. 학습은 쌓여야 힘이 생기고 내 것이 되어 있어야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다. 그게 많아질수록 재해석도 가능해지고 변주와 확장을 할 여지도 생긴다. 교재를 하나 만들고 다시 하나 만들고 세 권쯤 만들고 나니 의도치 않게 다음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쪽 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이 정도까지 오게 되니 끝을 볼 이유가 생겨버렸다. 책을 만들면서 쌓이는 지식은 다음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고 콘텐츠의 분량은 갈수록 많아지고 정교해졌다.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는 몰랐을 것이고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그런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예컨대 기타를 처음 배울 때 코드를 많이 아는 것보다 기본적인 코드 전환을 더 많이 연습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기초 연습이라고는 해도 음악과 어우러지도록 노래를 부르며 연습해야 한다는 것은 아마 레슨을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을 만들고 레슨을 하면서 배울 수 있었다. 가르치는 것을 알게 되자 배우게 되었다.

삶에서 파편적으로 배워온 지식들은 의식적인 정리를 하지 않으면 이 역시도 재분류가 어렵다. 한 순간의 감정이나 통찰이 떠올라도 복기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때문에 지식이나 의미가 더 나아갈 수도 없고 배움을 얻기도 어렵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긴 시간 회고해야 비로소 한 글자씩 툭툭 떨어진다. 생각을 꺼내놓고 분류하고 순서를 정하면 그제서야 체계가 생긴다. 그리고 이걸 반복한다. 기록물이 남아야 내 것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결국에 결과물을 갖는 사람은 쓰는 사람이다.

지금까지는 10여년에 걸쳐 기타에 대해서만 정리를 했다. 덕분에 열 권 정도되는 책이 나왔고 덕분에 한 시절을 잘 먹고 잘 살았다. 다음은 기초 베이스 기타이고 지금 작업 중이다. 내년 초면 초안이 전부 완성될 듯하고 이것으로 다음 스텝을 삼을 예정이다. 그다음은 글쓰기, 그다음은 자기다움, 그다음은 브랜딩이며 그다음이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다 쓰려면 10년은 더 걸리겠고 아마도 평생 걸릴 것이다. 관련하여 할 일도 더 많아지겠지만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평생 쓰는 사람이고 싶다. 쓰면서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