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에서 나온 서평 쓰는 법을 읽다 보니 느리게 읽는 방식이 유행했었나 보다. 2016년에 출간된 책이니 그 유행은 아마 그보다 훨씬 전이었지 않을까. 나야 독서계? 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기에 그런 유행을 들어본 적이 없지만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이미 느리게 읽는 유행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머리에 남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회사를 다닐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마케팅과 자기 계발서를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생존의 한 방편이었다. 읽은 책을 제대로 이해를 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내용이 기억나는 것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무슨 책을 읽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번 샀던 책을 또 산 적도 있으니까. 그때는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최대한 책을 빨리 읽어버리는 데 집중했다. 이 책 읽고 다음 책을 읽어 나가는 것을 경쟁하듯 밀어붙였다.
독서의 수준인 높이지 않은 채 닥치는 대로 읽어가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책이 어렵다고만 생각했지 내 독서의 수준이 처참한지는 몰랐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한 줄을 눈으로 정확하게 따라가지 못한다는 걸 발견했다. 글자를 정확하게 보는 게 아니라 주변 시로 대충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단어를 이미지로 잘 떠올리지도 못했다. 그러니 읽어봤자 뭔 소린지 알 수가 있나. 하지만 계속 읽고 또 읽었다.
개중에는 쉬운 책도 있었고 문장과 내용이 어려워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넘어가는 책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차츰 쉬운 책들 위주로 읽게 되고 어려운 책들을 점점 서가에 꽂아놓게 되었다. 책을 읽는 레벨이 점차 나의 독서 수준과 비슷해졌다. 하지만 빨리 읽고 싶은 욕심은 여전해서 그마저도 대충대충 읽었다. 이렇게 읽으면 사실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 어떠한 이미지들은 희미하게 남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거나 이해시킬 수는 없었다. 머릿속에 지식이 남지 않다 보니 책 사는 걸 멈추고 한 책을 여러 번 읽게 되었다.
여러 번 읽으면서 좋아진 것은, 글자에 시선을 더 잘 고정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길 때 단어 하나하나를 인식하는 훈련이 더 잘 되었고, 문맥에 맞춰 끊어 읽게 되면서 문장의 이해가 좋아지게 되었다. 느리게 읽게 된 첫 단추였다. 대충 국에 밥 말아 후루룩 먹던 것을 밥이며 반찬이며 한 상 잘 차려서 먹는 기분이었다. 느리게 먹으면 소화도 잘 되는 법이다. 이해되는 것이 많아지자 처음에는 못 봤던 내용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읽는다고 해서 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아껴 읽는 편이라 여태껏 줄도 안 치고 메모도 하지 않았는데 작년부터는 그 습관을 버렸다. 책에 줄을 치기 시작했고 생각이 떠오르면 옆에 메모를 적기도 했다. 줄을 칠 때는 보통 작가의 주장에 줄을 쳤다. 작가의 주장이 논리적 구조에 잘 들어 맞는지도 살펴보면서 책을 보게 되었고 책은 더 천천히 읽게 되었다.
이제는 책을 보고 나면 정리를 해야 했다. 읽었던 내용을 잃어버리지 않고 싶어서 기록으로 보관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독후감도 아니고 서평도 아닌, 말 그대로 내용을 정리하고 내 생각으로 적용해 보려는 공부에 가깝다. 책을 여러 번 읽는 것도 좋으나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고 요약하여 기록하는 것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더 잘 기억하고 싶어서 타이프를 치지 않고 책에 줄친 내용을 직접 손으로 옮겨 적고 생각을 옆에 더 적어서 책 내용이 내 것이 되도록 기록한다. 학교 다닐 때나 이렇게 할 걸 마흔 중반이나 되어 이걸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나의 독서 화두는 적층이다. 지식이 쌓이는가. 그 문제인 것이다. 느리게 읽고 정리하여 공부를 할수록 지식은 쌓여갈 것이고 관련된 내용들을 추가로 읽으면서 지식이 더욱 확장되리라 믿고 시작하게 되었다. 확실한 것은, 느리게 읽었을 때의 이해도가 월등히 높았다는 것이다. 노트를 하면 기억나는 것이 훨씬 더 많아졌고 그걸 되풀이해서 읽다 보면 머리에 박혀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었다. 사업할 때는 급해서는 되는 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는데, 독서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느리게, 그러면서 안전하게 가는 것은 망고의 진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