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0월 21일 (토)
민호의 결혼식은 꽤나 즐거웠다. 보통 식전에 신랑신부와 사진 한 번 찍고 입장 하는거 보고나면 곧바로 밥 먹으러 가는게 일반적인 업무 프로세스지만 오늘은 15분 예배, 40분 토크 콘서트로 구성되어 아쉽게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축의금을 기부는 많이들 하지만, 전액을 학교 짓는 사업에 기부하는 것은 오늘 처음 보았다. 이타적인 그들.
민호는 망원동 시절부터 보았고 가끔 북트에 간식을 사가지고 놀러오기도 했다. 젼과 킹동등등의 사내들과 함께 연남동 지하에서 저스트댄스도 함께 추고 놀았으며 킹동네 러브하우스에서 보드게임이며 닌텐도 게임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망원동에 혼자 살면서도 음식도 꽤 잘해먹고 나름 섬세하면서도 자기 하고싶은 것들을 차례대로 해가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여자친구가 생기고나서는 사람이 좀 달라졌다. 더 훤칠해지고 세련되어 졌다고나 할까. 여자친구와 함께 프리미엄 강아지 간식 사업을 시작했다. 안정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차곡차곡 준비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다.
사람은 언제 안정감이 생기는 걸까. 돈이 많아도 매일 어떡하지 어떡하지 고민하던 사람들을 본적이 있다. 삶이 안정된다는 것은 그런 차원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어느날은 레슨생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같은 안정감은 어떻게 만든거예요?” “글쎄요. 저한테 어떤 안정감을 느끼셨어요?” “그냥 대화하다보면 저랑 다를 거 같아요. 저는 마음이 급해서 꼭 그자리에서 승부를 보거든요.”
그때 아주 조금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안정감이라는 것. 그것은 자기 속도를 찾았을때 나온다는 것을. 어디로 가야할지 알고 어떻게 가야할지 알고 얼마나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고있다면, 이런이들의 삶에서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다면 주로 목표 달성과 성과를 쫓을 때 생긴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불안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람마다 다르기에 성취욕이 높을수도 있고 꼭 해내야하는 상황일 경우도 있지만 손에 잡힐듯한 성취를 놓을 용기는 이 꽉 깨물고 수 백번 다짐을 해도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철컥하는 삶의 한 부분에서 트리거가 작동되는 순간이 생기면 그 때부터 기어가 풀리면서 서서히 느려진다. 레슨을 하던 그 시절의 나는 꽤나 곤궁한 상황이었지만 내 방식대로 하나씩 하나씩 헤쳐나가던 과정에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는 당연히 알 수 없다. 아마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죽을때까지 찾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비전과 목표는 평생 갈수도, 몇 번 바뀔수도, 자주 바뀔수도 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은 그 세워진 목표로 향해가는 자신의 태도이다. 이것은 어려서도 늙어서도 동일하게 발현된다. 그 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약점도 많이 보완되지만 그 근본이 잘 바뀌지는 않는다. 이러한 자신의 태도가 우리 삶을 지배한다.
삶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고 사는 치기어린 시절에 조차 이것은 이미 작동하고 있다. 이 태도를 잘 가꾸고 발전시킨 사람에게는 안정감이 생긴다. 자신의 삶에 자신이 있고 자기만의 속도를 알기에 무리하지 않고 삶의 중심이 내면에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탄탄대로일까. 어렵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히 역경과 고난이 몰아치겠지만 이런사람은 삶에 대한 태도를 바탕으로 충분히 이겨낸다. 삶에는 기복이 있으니 자신을 유지하면 다시 좋은 궤도에 를 수 있는거다.
결혼식 마지막에 민호는 중식이 밴드와 함께 신해철의 그대에게를 불렸다. 그리고 파워넘치는 일렉 솔로는 내 폰에 고스란히 담겼다. 둘이 함께하는 인생의 굴곡은 락스피릿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밥을 먹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