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은퇴한 사람처럼 조금씩 일하면서 살고 싶어요.” 오랜만에 만난 이뜨레는 그다운 이야기를 했다. 최근의 삶을 돌아본다면 나 역시도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은 일종의 환타지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삶의 99%가 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상이 되기도 한다. 시간을 압축해서 일하다보면 200% 이상 일에 매몰되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도 대답을 했다.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30대에는 성취가 중요했다. 100억 매출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매출이 성장할 때는 도전할만 하다고 느꼈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주어진 일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그 이상의 일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마케팅 흉내만 내고 있었다. 사업을 일으켜본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일을 어떻게 해야 성장할 수 있는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장사가 되니까 그냥 그 안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해본 것 뿐이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실력과 안목을 키우는 게 관건이었다.
공부를 하러 다니고 뭔가를 새롭게 바꿔보기 위해 업계에서 하지 않던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지만 역시 대부분은 허탕이었다. 잘 운영할 능력이 없었던거다. 그래 이런 시도를 통해서 나도 조금씩 성장하는거지 속으로 되뇌였다. 외부의 것들에 신경을 쓰다보니 집토끼들을 죄다 놓쳐버렸다. 매출이 줄자 이 사업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다. 하고 있는 게 더 많아졌는데 매출은 갈수록 줄었다. 나는 더욱 많은 걸 시도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열심과 오만이 뒤섞인 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내가 일을 멈추는 순간 사업은 죽는다. 하지만 9년을 쏟아서 만든 사업이 통째로 사라진다는 두려움보다 하루라로 빨리 이 사업에서 내려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나는 매출을 쫓고 있었고 내발로 들어간 일의 늪에 스스로 갇혀 빠져나올 수 없었다. 내 삶을 매출과 목표가 정해놓은 방향에 끼워맞춰 버리면 그 순간 나는 사라져버리고 만다.
사업을 정리하고 나서 나는 나다운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환타지다. 내 손으로 일궈낸 것으로 나의 영역을 만들고 조금씩 그 삶을 맛보고 싶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나를 이끌어주리라 믿었다. 중고 서점을 했다가 접었고 기타 레슨도 하기 시작했다. 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돌파구가 조금씩 생겼지만 일이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일에 매물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충분히 즐겁게 여길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의 목표가 더이상 성장에 맞춰져 있지 않아서였다.
예전의 사업에 비하면 매출은 턱없이 작았지만 오히려 삶은 빠르게 안정되었다. 그렇게 6년이 지났다. 삶이 내 뜻대로 움직인 적은 없지만 격변하는 환경에 조금은 유연함을 갖추기 시작했고 예전처럼 일을 많이 하지 않아도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다운 일을 찾는 것은 평생 도전해도 찾기 어렵지만 이 고민을 멈추는 순간 인생은 생계와 목표에 매몰된다. 사실 워라밸이라는 건 일을 균형있게 한다기 보다는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일을 찾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