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는 길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

이끼가 특이한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줄기에서도 생존에 유리한 환경이 되면 싹이 나온다는 겁니다. 어떤 환경이 이끼가 자라기 좋은지 테스트하다 보면 결국에 세 가지로 귀결되는데요. 하나는 공기 중의 습도, 하나는 환기, 다른 하나는 온도입니다. 이걸 잘 맞추면 이끼가 잘 자랍니다.

하지만 이끼는 성장이 너무 느려요. 이끼는 쑥쑥 크는 경우가 없습니다. 환경이 나아졌는지를 테스트하려면 녀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봐야 할 텐데 매일 그대롭니다. 좀처럼 자라지 않으니 세팅이 잘 되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혹 그 사이에 말라비틀어져 버리거나 과습으로 색이 허옇게 바래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환경 체크하기도 전에 죽는 거죠.

결과를 빨리 보고 싶을 때는 늘 조급해집니다. 이걸 잘 다스리지 못하면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죠. 잘못된 결정의 8할은 늘 조급함 때문이었습니다. 빨리 결과를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드는 것들은 죄다 허접하거나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게 되었습니다. 조급함은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기에 욕심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하루 종일 집에 앉아 써놓은 글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잘못돼서 다시 고쳤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서 그다음에는 쓴 글을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습니다. 그래도 문제가 심각해서 이제는 한 문단씩 다시 살펴보며 어떤 기조로 톤을 유지할지 고민하며 고쳐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하는 일은 글쓰기뿐입니다. 거의 10개월을 죽치고 앉아 글을 쓰고 있으니 정말 죽을 맛입니다. 되는 거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놓지 않고 계속 쓰다 보니 이미 제 글에도 한 줄기 새싹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뭔가 되는 것 같은, 지금 가는 길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물론 책을 만들면 잘 팔리는 거랑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안도감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지나는 중입니다. 가끔은 너무 까마득하거나 막연해서 이게 되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닥치고 하다 보니 이제야 실마리가 보이는 듯합니다. 돌아보니 삶에는 인내 없이 되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