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 튼다.
사람들은 어떨 때 도가 튼다는 표현을 하는지는 다 안다. 많이 해 보는 것. 그리고 일정 수준을 넘을 때까지 하는 것에서 나온다. 얼마나 하는지를 세지 않고 묻지 않고 따지지도 않고 반복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뭘 좀 해 봤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조종사의 무사고 조종 시간이 중요한 것처럼 (사실 얼마나 중요한 건지는 모르지만 조종사들은 몇십만시간 무사고 달성이라는 타이틀이 달리는 걸 기사로 종종 보았으니까) 노하우는 셀 수 없는 반복에서 진가가 우러나온다.
강변북로
강변북로를 2년이 넘게 매일같이 다니다보니 어느 구간에서 어느 차선이 잘 빠지는지 연구를 할 필요성이 생겼다. 도로 사정이라는 것이 매번 변하기는 하겠지만, 막히기 시작하면 무조건적으로 잘 빠지는 차선이 있다는 사실은, 강변북로에서 두 시간씩 갖혀있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 것이다. 아무리 요리조리 차선을 잘 바꾼다고 해도 빨리 가는 방법은 있다. 거의 매일 테스트를 하고 거의 매일 성공한다. 도로에서는 주로 포인트가 되는 큰 차량들을 찍어놓고 내가 얼마만큼 되어야 추월할 수 있고 얼만큼 되면 안 보일지를 확인한다. 정말 쓸데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막히는 일정 구간을 잘 알면 빠르면 5~10분 가량 출근 시간이 단축된다. 2년 정도 걸렸다. 아까 내 뒤에 저만치 멀어져간 차들이 결국에는 모두 다 같이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난다는 속설이 들어맞아서 발버둥을 쳐봐도 더 빨리 갈 수 없는 날들도 있다. 제 때에 차선을 바꾸지 못하면 되돌리기 힘든 날도 있고 그런거다.
악보제작
놀랍게도 악보라는 걸 처음 만들었던 6년전, 악보를 한 개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일주일. 멜로디와 코드, 그리고 가사만 들어가 있었는데 그것조차 퀄리티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악보를 하나 만드는데 하루 정도 걸린다. 7일에서 1일로 단축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처음 만들었던 수준의 악보는 이제 2-30분 정도면 만들 수 있다. 지금 만드는 악보에는 온갖 리듬과 코드표 운지를 함께 넣고 기타 전용 타브악보까지 넣은 것이다. 이게 모두 판매용이기 때문에 수준이 높아야 하고 잘 만들어야 한다. 물론 책으로 출판되는 악보집에도 들어가는 수준이어야 하므로 잘 만들어야 하는 것. 처음에는 외주를 주려고 했으나 돈이 없는 관계로 혼자서 하게 되었는데 역시나 고인물이 되어가는 중이다. 늙어서는 악보 그리는 노인이 될지도 모를 일.
영상편집
12월부터 지금 4월까지 혼자서 강좌를 촬영하는 것과 영상을 편집하고 사이트에 업데이트를 하는 것에 많은 노하우가 쌓였다. 원래도 강좌를 만들어서 유튜브로 업데이트 했지만, 최근 5개월동안 10~20분짜리 강좌 영상을 170편 이상 제작하여 업데이트를 하였다. 앞으로 두 과목 7-80강 가량이 남았는데 이것도 세 달 안에는 마무리가 될 예정이다. 영상을 찍는 것부터 편집하고 업데이트를 하는 것까지 이제는 익숙해졌다. 영상은 컴퓨터 속도가 무조건 좋아야 한다. 그리고 빠른 손놀림과 컷편집의 포인트를 잘 알아야 한다. 나는 강좌 영상을 주로 올리기 때문에 일반 영상 제작자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돌사진을 찍어주다가 영상을 많이 찍게 되어 4K 60P로 10여분짜리 영상을 만들어주게 되었는데, 그걸 만드는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질 않았다. 영상에 들어가는 이펙트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니 그렇기도 하지만 그것 없이도 내가 원하는 영상을 만드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제일 오래 걸린 것은 음악을 선택하는 시간이었고 인코딩 시간도 14분정도 걸렸다. 그게 다다. 영상을 보내주니 눈물좔좔 흘려주셔서 약간의 노동에 위안이 되었다. 유튜브를 10년가량 업데이트 하면서 1,000개 정도의 영상을 만들어 올렸는데 지금처럼 빠르게 작업할 수 있는 상황인 적은 없었다. 프리미어를 다루는 손도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좋은 컴퓨터를 사용하면 능률이 오른다. 실력이고 나발이고 역시 좋은 컴퓨터가…
실력은 결국 속도
기타를 가르치면 언제나 있는 일 중 하나가 기초도 안 되어 소리가 엉망인데도 원곡 속도를 지키려고 리듬을 엄청나게 빠르게 치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어설픈데 대충 빠르게 하는게 좋을 수도 있지만, 지난 10년이 넘도록 그렇게 해보니 될 일도 안 된다는 걸 몸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기타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도 기본기를 좀 잘 만들어 놓고 코드 전환과 리듬 연습을 조금씩 완성해 나가다 보면 소리가 좋아지는데, 소리가 좋아지는 그 타이밍부터 템포를 올리라는 주문을 한다. 그러면 좋은 소리를 가지고 원곡 수준으로 템포를 빠르게 올릴 수 있게 된다. 완성도가 높은 상태로 원곡 연주가 가능해진다. 실력이라는 것은 차곡차곡 쌓이게 되는 것이고 그게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속도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수준까지 높아져서 업무의 능률이 좋아지게 된다. 전혀 다를 바 없는 이치다. 툴을 다루는 실력이나 능력뿐 아니라 일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과 추상적인 업무 진행도 마찬가지다. 빨라지고 익숙해지면 그게 실력이 된다. 그러니까 남들이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일을 마무리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유유자적한 것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도가 텄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을 살면서 이런 노하우를 가진 것이 열 개 정도 있다면 무엇이 걱정일까. 무슨 일이든 넘사벽의 존재감으로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의 노하우가 하나도 버려지는 것 없이 쌓이도록 만들어야 하고 그걸 전문화 시키고 예리하게 갈고 닦아 나가야 한다. 어려서부터 하는 게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그래서 지식보다는 노하우와 스스로 헤쳐나가는 자립 정신을 키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학생때부터 자신의 노하우가 축적된다면 20대에는 넘볼 수 없는 실력자가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이 30대가 되면 내공이 육십갑자는 되지 않을까. 축적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강변북로에서는 특히 더.
(2019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