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 하면 7080인 시절이 있었다. 나는 78년에 태어났고 80년대 음악을 듣고 자랐으며 9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200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7080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7080 음악은 몰랐다. ‘내 사랑 내 곁에’가 100만 장 넘게 팔려 대 히트를 쳤던 1991년도조차 나는 그다지 음악에 관심이 없었다. 우연히 티브이를 보고 있던 나는 당시 김현식의 아내와 아들이 상을 받은 모습을 보았다. 가수가 안타깝게 사망하는 바람에 가족들이 대신 상을 수상하는 생경한 장면이 인상 깊었다. 장면이 인상 깊었던 것이지 노래가 좋다고 느낀 적은 없다. 지금 들으면 정말 끝내주는 명곡이지만 어린이가 그 깊은 감정선을 알 리 없었다. 음악은 주로 티브이에서 나오면 듣는 정도였다. 가끔 가요톱텐을 보았고 마루에 있는 전축을 틀어 클래식 음악 시디를 들었다.
7080 음악에 대해서는 그다지 기억나는 노래도 좋아하는 노래도 없었다. 교회에서 부르는 복음성가 정도가 가장 많이 부르는 장르였을 것이다. 산울림은 알아도 노래는 몰랐고 김세환, 송창식은 알아도 트윈폴리오는 몰랐다. 때문에 레슨생들이 7080 노래를 요청하면 나는 그제야 유튜브를 찾아가며 한 곡씩 들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가르쳤던 중년의 레슨생 한 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 수 십 곡을 주루룩 펼쳐 보이며 이런 곡을 치고 싶다고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목록에서 내가 아는 노래라고는 송창식의 담배 가게 아가씨 말고는 없었다. 존 덴버, 김정호는 물론이거니와 최백호와 김광석의 노래들도 나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여 고난의 길이 시작되었다.
살면서 통기타는 100% 교회에서만 쳐왔기에 7080은 좋아하는 장르도 아니었고 7080이 트로트와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도 뒤늦게야 알았다. 그래서 앞서 받은 리스트의 곡들을 하나씩 들어보며 레슨의 방향을 만들어 나갔다. 7080도 처음엔 별로였지만 듣다 보니 어떤 감성인지는 조금 파악해 볼 수 있었다. 옛날 곡들이기 때문에 곡 자체가 어렵지는 않아서 레슨생들의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빠르게 카피를 했다. 재밌는 사실은, 레슨생들이 들어올 때마다 이 황금 리스트에 있는 곡들을 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목록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날도 새로운 레슨생이 방문하였다. 그녀는 대학생이었고 기타를 반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다. 속으로는 ‘여성 보컬이라… 여성 보컬용 7080은 내 황금 리스트에 없는데…’ 나는 물었다. “어떤 곡이 치고 싶으세요?” “아이유의 기차를 타고요.” “네? 기타를 차고요?”
아이유는 마시멜로 아닌가. 아이유가 다른 곡도 불렀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통기타를 치는 모든 사람들이 7080을 원하는 줄 알았으나 젊은이들은 달랐다. 줄곧 아저씨들만 만나다 보니 통기타로 요즘 가요를 치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자기 나잇대에 맞는 곡을 좋아할터.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안목이 내게는 없었다. 하지만 태연하게 “그렇다면 우리 노래를 같이 들어보고 이야기해 볼까요?” 음악이 플레이 되었고 나는 조금 긴장한 채로 노래에 집중했다. 듣다 보니 초보가 잡기에는 몹시 어려운 코드들이 연달아 나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줄기의 희망. “아쉽지만 기타를 처음 치면 이 곡을 바로 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신공으로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물론 나중에는 이 곡을 목표로 차근차근 연습을 해 나갔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곡을 카피해야 했다.
그 후 조규찬, 임슬옹, 거미, 가을방학, 스탠딩 에그, 소녀시대, 적재, 샘 김, 리쌍, 지코, 태연, 장기하와 얼굴들, 악동뮤지션, 검정치마, 이무진, 김현철, 프라이머리, 요조, 십센치, 레드벨벳, 두아리파, 혁오 등등 내 인생에서 자의로 들을 이유가 하나도 없던 가요를 닥치는 대로 카피하고 가르치게 되었다. [자의 반]은 애초에 없었고 온전히 [타의 전부]였다. 수십 평생을 재즈와 교회 CCM만 들어오던 경건한 나였기에 가요에는 별 취미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선생님, 이 노래 좋아요. 같이 들어봐요.”라고 꼬신 후 나에게서 리듬과 코드 악보를 받아냈다. 기타 레슨을 처음 할 때 통기타는 교회 반주와 7080 노래만 해도 된다고 했던 그 누군가에게 따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물론 가요가 듣기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관성대로 CCM과 재즈를 들어왔을 뿐이다. 솔직히 7080은 여전히 흥미가 없지만 가요는 듣다 보니 좋은 노래들이 많아서 최애 리스트를 만들었다. 덕분에 [최신가요 황금 리스트]도 완성. 7080 황금 리스트와 더불어 타의가 이루어낸 최고의 성과였다. 이것은 훗날 제작될 교재에 난이도별로 수록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무지한 나에게 좋은 노래를 소개해 준 나의 레슨생들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