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방전도라는 게 있다. 길거리에서 예수님을 전도하는 일을 말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인도 가장자리에 서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8-90년대에는 주일날 오전 예배가 끝나면 교회 주변을 다니며 전도를 하는 교회들이 많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이에 다녔던 교회는 상가 건물의 지하와 2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주일 오전에 예배가 끝나면 점심시간쯤 되었는데, 모든 교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교회 주변을 돌아다니며 전도를 했다. 전도지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며 예수님 믿으시라고 했다. 8-90년도 당시 교회들은 이런 방식의 전도를 많이 했다. 물론 나 같은 뺀질이는 전도지만 들고 교회 친구들과 이리저리 돌아다닐 뿐이었다.
버스 정류장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서서 복음성가를 불렀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나요~ 발 걸음 무겁게~” 예수 믿으세요라는 노래를 부르며 전도를 했는데 이날도 어김없이 L형이 통기타를 들고 반주를 하고 있었다. A-D-E 코드만 나오는 단순한 곡이었기 때문에 중학생인 나도 어렵지 않게 칠 수 있었는데 한참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던 나에게 놀라운 광경이 목격되었다. L형은 노래 중간에 다른 코드를 넣은 것이었다. 구성된 단순한 곡인데 중간에 모르는 코드를 하나 넣었더니 곡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코드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길거리 중간에 서서 기타를 치던 그 형의 손놀림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코드 모양을 유심히 보고 외웠다. 하지만 집에 와서 쳐보려 했지만 이미 잊은 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코드는 F#m 코드였다. 그때는 코드를 하나하나 주워서 배웠고 교재를 펼쳐 코드 모양을 하나하나 잡아보았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기타를 쳤다.
기타는 언제나 집에 널브러져 있었다. 집에는 어머니가 사두신 클래식 기타와 기타 교재가 있어서 나는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 마루에 널브러져 있는 기타를 가끔 만지작거렸다.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누나와 나를 앉혀놓고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느 날 기타를 잡아보고 튕겨볼 마음을 먹게 된 걸 수도 있다. 물론 처음 잡았을 때 기타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어른들은 이걸 도대체 어떻게 치는 걸까. 기타 교재를 펼쳐 첫 챕터에 나온 A 코드와 D 코드 등 쉬운 코드를 여러 번 잡아보고 튕겨 보았지만 잘 안 되길래 옆집 병호와 딱지치기를 하러 나갔다.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이것저것 쳐보다가 팽개치고 나가 놀기를 반복했다. 이때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즈음이었다.
그러다가도 한 두번의 큰 진전이 있었다. 교재에는 코드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서 모양만으로도 어떻게든 눌러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위치를 찾아보며 소리가 제대로 나는지 확인하면서 아 이게 G 코드구나 D 코드구나 추측해가며 연습을 했다. 연습을 위한 노래 악보도 있었지만 모르는 노래들 뿐이었다. 그렇게 기초적인 코드 몇 개를 익힌 다음 교회에서 사용하던 악보집을 펼쳐놓고 그 코드만 나오는 노래를 찾아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클래식 기타는 초등학생의 손으로 코드를 누르기에는 너무 컸기 때문에 위, 아래로 넓게 벌리는 G 코드는 다 누를 수 없었다. 그래서 1번 줄을 누른 상태에서 6번 줄까지 손가락이 닿지 않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맨 위 줄은 버리고 아래 한 줄만 눌러서 소리를 냈다. 물론 안 누른 곳은 치지 않았다. 아래 몇 줄만 살살 쳐보면서 기타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어보니 절반만 쳤는데도 화음이 얼추 나오는 것이었다. 뛸 듯이 기뻐 G 코드도 C 코드도 아래 부분만 대충 잡아 코드의 모양을 외웠다. 물론 반쪽짜리라 제대로 치면 음이 모두 이상해졌지만 뭐라 할 사람도 없으니 아무렇게나 신나게 연습을 했다.
기타는 일주일에 하나, 한 달에 하나씩 배워나가던 코드에 정이 붙기 시작했다. 제대로 해볼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심심하면 튕겨보는 게 곧 연습이었다. 그렇게 대충대충 기타를 치던 차에 F#m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코드는 검지를 모든 줄에 대야 하는 ‘바레 코드’다. 물론 코드도 대충 누르던 초등학생이 이런 코드를 누를 수 있을 리가 없다. 있는 힘껏 바들거리며 눌러보다가 손가락에 힘이 없고 눌러야 하는 위치에 닿지 않자 역시 금방 포기했다. 포기가 빠른 것은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부분만 쳐보면 어떨까? 하면서 저음 부만 몇 줄 눌러서 쳐보았다. 오오 전율!
당시에는 ‘찬미예수’라는 걸출한 악보집이 있었는데 나는 거기 있는 노래들을 하나씩 연습하며 노래를 불러보았다. 기타는 거들 뿐, 노래를 부르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주 희미하게라도 되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 곡은 제목 옆에 쓰여있는 번호에 동그라미를 쳐 두었다. 그때 노래들은 1도, 4도, 5도로만 구성된 곡이 많아 A key나 G key, D key 곡은 어렵지 않게 쳐볼 수 있었다. 소리를 어떻게 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엉망진창이었을거다. 그래도 ‘나’라는 어린이가 기타로 노래 반주를 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어느 날 내가 기타를 친다는 소식을 접한 교회 전도사님이 청소년 찬양 축제에 같이 기타를 쳐주지 않겠느냐고 요청을 하셨다. 나의 데뷔 무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