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상대음감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는 사우디에서 일을 하고 오셨다. 한국에 방문하실 때마다 선물을 사 오셨는데 작은 병에 담긴 이브생로랑 향수 세트도 있었고 (분명 어머니 선물), 미 취학 아동을 위한 방바닥을 돌아다니는 비행기 장난감도 있었다. (분명 내 선물) 물론 나는 코코아를 가장 좋아했다. 철로 된 갈색의 진한 코코아 통을 보면 나는 늘 먹어도 또 먹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 오신 물건 중에서도 최고는 단연 카시오에서 나온 PT-30이라는 초미니 키보드였다. 길이가 40cm 정도 되는 작은 사이즈의 건반이었는데 이 안에 작은 스피커와 작은 사이즈의 건반, 그리고 작은 LCD 화면과 알 수 없는 버튼들이 잔뜩 달린, 보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그런 건반이었다. 옆구리에 끼고 다녀도 될 정도로 작고 얇았기 때문에 얼핏 보면 장난감처럼 보였지만 기능이 다양하고 그럴듯해서 장난감 이상의 만듦새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조옮김도 된다) 반주를 틀면 쿵작쿵작 드럼과 베이스 소리가 나왔고 왼쪽에 붙어있는 스피커 하단에는 코드를 누를 수 있도록 화음을 낼 수 있는 버튼이 달려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 누구도 이 녀석을 제대로 다루는 사람은 없었다. 

하루는 누나와 함께 리듬 반주를 틀어놓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는데 왼쪽에 있는 코드 버튼을 누르면 반주의 음이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도대체 이게 뭘까 생각하면서 아무렇게나 눌러보곤 했는데 그날은 C를 눌렀더니 되게 기분이 좋았고 F를 누르니 뭔가 연결되어 도약하는 느낌이 들었다. C와 F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위에 샵이 있는 알파벳도 눌러보았는데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리듬에 맞춰 하던 대로만 놀고 있었다. D를 눌러도 좀 이상하고 A를 눌러도 좀 이상했는데 G를 눌렀더니 아니 이게 뭔가 되게 그럴싸한 거다. C – F – G를 왔다 갔다 하면서 듣기 좋지 않냐며 누나와 이야기를 했다. 코드라는 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으니 나는 이 코드의 진행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하단에는 sus4, maj7, min7 같은 정체 모를 버튼들도 있었는데 합쳐서 누르는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몰랐다. 이것이 모두 코드(화음)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버튼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화음의 맥락을 전혀 몰랐으므로 오직 C – F – G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통기타를 배우면서 실로암을 쳐보니 이 곡이 바로 그 C – F – G로 만들어진 곡이 아니던가! 

통기타를 치면서 코드와 코드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음악적 이론을 배운 적이 없다 보니 내막을 알 수는 없었다. 실로암은 C가 나오면 늘 F가 다음에 나왔고 F 다음에는 다시 C로 갔다가 G로 옮겨갔다. 그리고 이걸 반복하면 노래를 칠 수 있었다. 카시오 PT-30을 가지고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C와 F는 네 칸 간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A 코드와 D 코드, E 코드에서도 같은 맥락이라는 걸 교회 전도사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 놀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A 코드와 D 코드도 네 칸이라는 거잖아?!” 이제 세상이 네 칸 간격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노래를 칠 때도 코드끼리의 간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물론 음악 이론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2도, 3도 6도 같은 코드는 어떤 이유로 생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노래를 하나씩 외웠는데 외웠다기보다는 그냥 인식하는 것으로 노래에 나오는 코드를 기억했다. 간격으로 맥락을 이해하니 외울 필요가 없었다. 

나는 더 커서까지도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식으로 음악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누나도 교회서 피아노를 치던 사촌 동생도 악보 없어 두려워하지 않고 기타를 치고 피아노를 쳤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세계관에 의하면 사람들은 코드가 자연스럽게 들려야 되는 것이고 음간의 간격도 몇 칸, 몇 칸인지 아는 게 당연했던 거다. 청소년 찬양 축제 때 내 옆에서 같이 기타를 쳤던 두 살(위의) 형은 이제 외울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 노래들조차 모두 악보를 보고 치는 것이 이해가 안 된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몇 년간 교회에서 어린이 예배 피아노 반주를 했던 나의 아내도 당장 악보가 없어지자 매주 치던 노래를 칠 수 없었다는 증언을 미루어 보아 이것은 머리가 좋고 나쁜 것과는 관계가 없는 듯 보였다. 코드의 관계를 의식하고 코드를 맥락으로 이해하느냐와 관계가 깊었다. 운 좋게도 나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들으면 이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쉬운 코드는 거의 찾아낼 수 있었다. 음악 이론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가능했던 이유는 교회에서 반복되는 코드 진행을 많이 들었던 것, 다른 하나는 악기로 그 노래들을 연주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타는 어느 정도 쳤으면 좋겠어요?” 통기타 레슨을 받으러 왔던 S에게 물었다. 
“노래를 들으면 코드랑 리듬이랑 직접 카피해서 원하는 대로 치고 싶어요”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럼 우리 도레미를 입으로 부를 수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볼까요?” 음의 간격을 물어본 이유는, 이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알면, 코드를 카피하는 게 무척이나 수월하기 때문이다. S는 말했다. 
“아이 선생님 도레미는 알죠.”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나는 
“해봐야 알죠.”라고 대답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도~를 부르고 있을 테니까 파를 불러보세요.” 하고는 아무 음이나 “도~”라고 입으로 소리를 내어 불렀다. S는 잠시 머뭇거리며 ‘파’에 해당하는 음을 입으로 불렀다. 
“파라고 발음은 했는데 사실 지금 부른 음은 ‘미’인 것 같아요.” 
“네? 정말요?”

S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레미를 악기 없이 스스로 머릿속으로, 혹은 입으로 불러서 쌓아 올리지 못했다. 머릿속에 음간의 간격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아니면 음을 대충 부르는 바람에 정확하지 못하게 발성한 걸 수도 있다. 도레미송을 불러보니 그건 잘 따라 부른다. 이걸 보면 이미 머릿속에 음계의 간격이 들어있어 무의식적으로 노래는 잘 따라 부를 수 있지만 의식해야 하는 도와 파의 간격은 머릿속에 음의 간격을 이해한 사람만 가질 수 있다. 아마 인류는 모두 도레미송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의 간격에 대한 생각은 음악을 배우지 않고는 의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음악을 많이 듣고 많이 따라 부르면서 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이 간격을 확고하게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굳이 청음 훈련을 하지 않더라고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음감이 장착된다. 어떻게든 음감이 발달한 사람들은 이 간격을 정확하게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S가 절대음감이었다면 “선생님 지금 부른 음 도 아닌데”라고 했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상대음감이라 진짜 ‘도’를 모르기 때문이다. 절대음감은 진짜 ‘도’를 알고 있고 상대음감은 기준이 되는 음을 기반으로 음을 찾아낼 줄만 알기 때문에 진짜 ‘도’를 모른다. 안타깝게도 절대음감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실력을 키울 수 없다. 과학적으로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6세 미만에서 정확한 음을 활용하는 음악 교육을 받았을 때 절대음감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 내용에는 6세 이후로는 절대음감의 학습이 불가능하다는 슬픈 사실도 포함이 된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절대 음감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음감은 놀랍게도 학습이 가능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상대음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원곡의 음 높이에 맞지 않아도 무반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데 이것이 상대음감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만약에 정말 음감이 없다면 (놀랍게도 있기는 있다.) 노래를 음을 맞춰 부르지를 못 할 것이다.

어찌 되었건,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리코더나 오카리나같이 음계를 연습할 수 있는 악기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위주로 배운다. 그리고 음계에 대해 배우는 시기가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음감을 발달시킬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한다. 부모님을 졸라서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배우지 않는다면 아마 평생 음악과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기타를 가르치면서 알게 되었다. 매일 마룻바닥에 엎드려 카시오 PT-30의 건반을 눌러보면서 음계에 대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을 본다면 나는 꽤나 운이 좋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