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학원생활

수원 남문은 수원에서 가장 큰 번화가(였)다. 수원성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하지만 남문에는 남문시장과 지동시장 등 큰 시장이 몇 개나 이어져있을 만큼 거대한 상권이다. 나는 가끔 어머니와 옷을 사거나 먹을 것을 사러 남문에 오고는 했다. 남문은 남문을 가운데로 두고 빙 돌아가는 로터리식 도로였는데 주변은 모두 버스 정류장이었고 오가는 사람들이 들끓는 교통의 요지였다. 남문에 오려면 집에서는 2번이나 3번 버스를 타고 와야 했으므로 거리가 꽤 되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드럼 학원에 다닐 생각이 없는지 물으셨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하며 집에서 남문까지 버스를 타고 드럼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원은 로터리에서 바로 보이는 건물 4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원을 등록하고 첫 수업일에 갔다. 들어가자마자 선생님은 음악 노트에 한 마디 리듬을 두 가지 정도 그려넣고는 복도 맨 끝에 있는 드럼 연습실로 나를 데려갔다. 칸막이로 가로막힌 작은 연습실을 지나 드럼 연습실로 들어갔는데 창문 아래로 복잡한 남문의 버스 정류장들이 보였다.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이 공간 안에는 다 낡아 부서질 거 같은 드럼 한대와 고무 타이어가 놓여있었다. 다른 칸의 아저씨는 열심히 통기타를 연습하고 있었다. 나는 타이어 앞에 앉아 악보를 시범 보여주는 선생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줍은 10대였기 때문에 나는 타이어를 왜 두드려야 하는지 묻지 못했다. 리듬 악보를 어떻게 치는지보다도 나는 이걸 왜 연습해야 하는지가 더 궁금했다.

세트 드럼에 앉아 쿵짝쿵짝 할 줄 알았는데 스틱을 들고 타이어 앞에 앉아 맥락 모를 리듬을 박자대로 치는 연습만 계속 했다. 타타타탓 쿵, 타타타탓 쿵. 오른발 페달은 유격이 맞지 않아 허공에서 흔들거렸다. 선생님은 자리로 돌아가더니 레슨 시간이 끝날 때까지 올 줄을 몰랐다. 교회에서 드럼을 (형들 몰래) 안 쳐 본 것은 아니었기에 연습실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리듬 악보대로 타이어를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옆 방 통기타 아저씨는 연습이 잘 안 되는지 으악 으악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내 마음도 그 아저씨처럼 으악으악 소리를 내고 싶었다. 수줍은 나는 그러지 못 했다. 한 마디는 불과 5초면 끝이 나는데 이걸 한 시간씩 연습하는 건 뭘까. 연습을 하다가 지루해서 밖으로 나왔더니 다음 시간에 보자고 하시길래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는 어떤 고등학생 형과 같은 시간에 연습하게 되었다. 그 형은 망가진 드럼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고 나는 고무 타이어를 두드렸다. 의자에 앉으면 서로의 등이 닿을만큼 작은 공간이었다. 당연히 서로 드럼을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타이어) 연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 형은 딱 한 번을 보았는데 연습하는 도중에 나에게 이것저것 재밌는 얘기를 많이 해주었다. 타이어를 두드리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려주었는데 한참 듣다 보니 선생님은 왜 이런 걸 알려주지 않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한 주 더 다니고 드럼 학원은 그만두었다.

피아노 학원을 다닌 적도 있었다. 다니던 중학교가 먼 곳에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오는 귀가길에 한 정거장 일찍 내려 피아노 학원에 들렀다. 학원이 끝나면 걸어서 집으로 갔는데 그 한 정거장이 꽤 길었기 때문에 집에 도착하면 내 몸은 이미 천근만근이었다. 학원은 교회 반주법도 가르치고 있었고 오르간도 가르치는 꽤 수준 높은 곳이었다. 동네 피아노 학원과는 뭔가 질적으로 달라보였다. 나는 악보를 못 보고 피아노도 칠 줄 몰랐기 때문에 바이엘부터 시작했고 실력이 조금 늘면서 체르니와 소곡집을 연습했다.

음을 누르면 피아노는 정직한 소리를 내었고 그것은 화음으로 번졌다. 음을 하나씩만 치는데도 화음처럼 들리고 나중에 소곡집을 연습 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화음을 연습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연습을 하는 내내 악보를 보는 게 어려웠다. 음의 간격을 찾으려면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어가며 계산했다. 하나씩 찾아가는 건 괜찮은데 한 번에 양손을 봐야하는 건 쉽지 않았다. 더욱이 초견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나는 항상 음의 간격을 세야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시면 나는 악보를 보는척 했지만, 실제로는 음을 엄청나게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악보를 보는 것보다 음을 외우는 게 더 빨랐기 때문이다. 미레도도솔파미레파시도솔솔… 선생님과 연습을 할 때는 한 마디 한 마디 반복해서 연습하기 때문에 음도 외우고 누르는 위치도 같이 외워서 쳤다. 악보를 보는듯 치고는 있었지만, 사실 나는 악보를 덮어도 오늘의 레슨 분량은 칠 수 있었다.

피아노 학원을 그만둔 이유도 8할은 악보 때문이었다. 아무리 악보를 봐도 나는 악보와 건반의 위치와 내 머릿속의 음이 하나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체르니로 넘어갔을 때 문제가 터졌다. 곡이 어려워지자 외우는 것 만으로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아마 체르니의 곡들도 수 십번을 들을 수 있었으면 따라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선생님과 부분 연습을 같이 하고 혼자 연습하는 시간에는 악보를 보며 연습하느라 숙련이 더뎠고 흥미는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 정형화된 반복 연습이 주는 유익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음에도 악보를 보는 시각보다는 청각이 언제나 먼저 작동했기 때문에 악보를 보는 것이 소홀했다.

통기타는 코드 누르는 위치를 그림처럼 외우는데 반해 피아노는 음을 누르는 간격의 감이 필요했다. 결국에는 피아노를 치면서 이 간격의 감을 만들지 못하고 악보도 못 보는 채로 종료하게 되었다. 어느순간 너무 피곤해진 탓이다. 원하는대로 악보를 읽을 수 없어서 피곤해졌고 피아노를 배우고 집으로 오는 길도 피곤했다. 그 시절에는 그게 전부였다. 그 후로 다시 악보와 인연이 생긴 것은 내가 교재를 만들면서부터였고 덕분에 악보가 많이 익숙해 졌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사실 통기타는 악보에서 음표를 보는 일이 거의 없다. 오직 악보 위의 코드 표기만 있으면 연주가 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피아노보다는 통기타가 더 배우기 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각자의 악기는 나름의 고충이 있는 법이라서 통기타가 무조건 쉬운 것도 아니다. 그나마 악기로서 접근성이 좋은 것 뿐이다.

통기타는 눈으로 본 코드 표기를 코드폼의 이미지로 매칭하기가 쉽다. 이것은 일종의 그림 맞추기 놀이와 비슷한데 C라는 글자를 보면 C코드폼이 연상되는 방식이다. 그런 이유로 통기타를 처음 배울때는 수 많은 글자를 코드폼으로 전환하는데 거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두뇌는 인지한 코드 표기를 즉석에서 코드폼으로 바꿔주는데, 처음 기타를 배울때는 이 회로가 만들어져 있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코드 표기 = 코드 모양으로 번개같이 빠르게 인식된다. 이 실력이 바탕이 되어 코드폼을 누르게 되며 코드와 그 다음 코드를 연결해 누르기 위해서는 손가락도 생각의 속도만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인식도 잘 안 되고 코드도 잘 안 눌러지는 상황이기에 복잡하고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코드의 모양을 인식하는 것이 손가락이 빨라지는 것보다는 언제나 더 빠르다. 그래서 조금만 연습을 해도 머리로는 알겠는데 손가락이 안 움직이는 상태로 업그레이드 되며 거기에서 더 연습을 하면 비로소 머리속의 생각만큼 손가락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이 새로운 코드를 배울 때마다 동일하게 반복된다.

통기타 연습이라는 것은 인식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동시에 손가락의 움직임을 빠르게 하는 과정이다. 아무리 머리가 빨리 돌아가도 손가락이 박자에 맞춰 누를 수 없으면 연주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머리로만 되고 손으로는 안 되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잘 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코드의 움직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 아니까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연주는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은 안 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잘 치는데 못 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들은 대체로 기준이 프로 연주자급에 머무르고 있다.

거의 모든 악기는 머리속에서 음을 작동시키는 방식을 악기의 연주 방식에 맞춰 재구성한다. 그리고 수많은 연습을 통해 손가락이 숙련 되어야 비로소 손가락으로 원하는 연주가 가능해진다. 인식과 손가락이 서로 합일된 상태여야만 비로소 아름다운 연주가 나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잘 맞는 악기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나는 피아노처럼 좌우로 쭉 늘어선 음의 간격을 익히는 것보다는 기타 지판 위에서 음이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더 잘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결국에 나는 통기타와 베이스 기타로 정착을 했다. 학원에서 배웠던 드럼과 피아노는 이제 온데간데 없고 독학으로 배웠던 통기타와 베이스만 내 인생에 남았다.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했던 것이 내 몸에 남아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