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를 다니면서 나는 교회에서 통기타를 열심히 쳤다. 중간에 드럼이나 베이스로 넘어와 연주를 하기도 했지만 학창시절에는 통기타가 영혼의 단짝이었다. 통기타는 지지부진하게 늘지도 줄지도 않았으며 늘 제자리였다. 교회에서 간신히 반주를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연명했다. 통기타를 더 배울 생각도 없었고 주변에 잘 치는 사람들도 이제는 없었다. 바레코드 정도는 무난하게 잡을 수 있는 정도는 되었지만 그 이상으로는 올라갈 수는 없었다. 어떻게 올라갈 수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내가 가진 실력이 줄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 사이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우리 식구들은 교회를 옮겼다. 새로운 교회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중고등 학생들이 많았는데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들이 여럿 있어서 합주 연습은 늘 그 아이들과 함께했다. 이 친구들과의 합은 꽤 좋았기 때문에 나는 매주 토요일에 있는 찬양 연습 시간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토요일에 오전 수업을 하고 학교가 끝나면 찬양 연습을 하기 몇 시간 전부터 교회에 가서 기타와 드럼을 만지작 거렸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이면 합주로 주말을 보냈다. 물론 어디 내놓을 실력은 아니었다.
하루는 수원의 대형 교회에서 학원 연합집회 같은 걸 한 적이 있었다. 수원 시내에 있는 중고등부 학생들이 모이는 큰 규모의 집회였다. 90년대 중반의 찬양 집회는 경배와 찬양이 주류였는데 지방에서 열리는 집회의 경우 유명한 팀의 음악을 그대로 카피해서 연주하는 편이었다. 교회 중고등부에서 이 집회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찬양팀이 어떻게 연주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다.
맨 처음 시작한 곡은 전하세 예수 4집의 첫 곡인 ‘감사하며 그 문에 들어가’라는 Am key의 단조 곡이었다. 이 곡은 전주에 클래식 기타 여러대가 난이도 높은 연주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이것을 라이브로 연주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부분 나와 같은 고등학생들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나와의 수준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그 오프닝 전주를 연주해 보려 했지만 나는 첫 곡의 시작 음이 어딘지조차 찾을수가 없었다. 지금껏 코드와 리듬 연습만 했었지 음계에 대한 연습을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연습 방법도 음악적 개념도 몰랐다. 하고는 싶지만 잘 되지는 않는 그런 시기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 됐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한다거나 배우려는 생각은 한 번도 없었고 해내야 한다거나 이루고자 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식의 성격도 아니었기 때문에 실력은 사소할 정도만 늘었다.
대학에서는 증인들이라는 찬양 동아리에서 베이스를 쳤는데, 어느날 찬양 대회에 참가하게 되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대회에는 실력 좋은 팀들이 많았다. 실용음악 전공자가 많지 않았던 90년대 후반임을 생각해보면 거기에 모였던 사람들은 대부분 음악 전공자인 것처럼 보였다. 세팅하는 장비도 우리 악기보다 좋았고 앰프며 건반도 두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키보드 옆에 미디 모듈까지 가져와서 세팅을 했다. 나는 베이스를 쳤으니 다른 팀에서 가져온 베이스에 눈이가게 되었는데 그들의 스트랩 조차도 좋아보였다. 그리고 다들 너무 잘했다. 평생 아마추어에 둘러싸여 살다보니 하프타임 셔플을 오른손 하나로만 연주하는 드럼 연주자는 그날 처음 보았다. 아 저게 한 손으로 되는거구나.
내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실력자는 대부분 교회 형이나 전도사님뿐이었다. 그들 역시 교회 안에서만 잘 치는 사람이었지 실력자들에 비빌 수준은 못되었다. 지금은 유튜브가 있어서 프로 뮤지션들의 연주를 쉽고 편하게 볼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다른 사람의 실력을 직접 보거나 경험할만한 방법이 거의 없었다. 작은 우물에서 나와 현실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었고 내 실력으로 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그러니 무기력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음악은 일상이었을 뿐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도 마음속으로는 늘 잘 치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사람들 앞에서 한 번에 짠!하며 실력을 과시하는 클리쉐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등장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내 삶에서도 이루어지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다. 그리고 이런 꿈같은 일은 정말 현실적이게도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좋은 실력을 갖기 위해 연습하지 않는 사람에게 실력이 생길리 없었고, 잘하는 사람과의 격차를 좁힐 방법을 스스로 고안해낼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나는 잘 하고 싶은 생각과 어정쩡한 현실 사이의 그 중간 어디엔가 머무르고 있었다. 애매한 포지션을 갖고 있었던 이유는 음악을 하며 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교사를 목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음악 활동을 하거나 뮤지션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악기는 단지 선교 사역에 쓸만한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태로 몇년이고 성장 없이 똑같은 실력에 똑같은 연주가 반복되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자기 자신의 실력이 수준급이라서 무뎌지는 매너리즘이 아니라, 실력이 올라갈 틈을 보이지 않으니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된 것이다. 그럴땐 기타가 거들떠 보기도 싫어진다. 실제로 통기타도 베이스기타도 안 친적이 여러번 있었다. 나는 왜 실력이 없는걸까 한탄을 할 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다른 무언가를 한 적은 없었다. 나는 한없이 느슨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