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화)

언제 봤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대학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시대는 SNS 시대이기 때문에 그가 어디에 살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도 나를 그렇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학시절에는 서로에 대해서 속 깊은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고 함께했던 기억도 별로 없는, 알지만 잘은 모르는 그런 사이였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단둘이서 본 적도 없었기에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관계였지만 그는 나에게 연락을 했고 만나게 되었다.
예상한 대로 그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40 중반의 고민이다. 무언가를 결정해둔 상황은 아닌 것 같았고 1년 혹은 2년 후에 퇴사를 할 생각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전날에는 같은 학교 친구 S를 만났다고 했다. S는 인도와 태국 등을 다니며 무역을 했는데 해외에서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정말 다방면으로 보고 있구나 싶었다.
딱히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고 선호하는 것도 없는 그는 이민을 갈 생각도 있는 것 같았고 그게 아니라면 적당히 벌 수 있는 만큼을 벌면서 지방에서 살고 싶어 했다. 자연을 좋아하고 한가롭게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막연한듯했다. 회사만 열심히 다녀왔기 때문에 집-회사-교회 이 범주 안에서만 살았던 그다. 사실 40대가 다 그렇다. 회사-집이 아니라 교회라도 있다는 게 어딘가. 교회라도 있으니 인간관계가 그나마도 확장되는데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가 더 늘어날 리 없고 삶에도 새로울 것이 없으니 회사 모니터 앞에 있다가 집으로 귀가하는 것이 일반적인 삶이다.
남자든 여자든 40대의 삶은 고착화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 얽매일 수밖에 없고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희생해가며 가족에게 헌신해야 한다. 생계는 어찌 됐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삶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도 사라진다. 덕분에 시야도 안목도 친목도 좁아진다. 직장 생활을 하는 십수년 동안 줄기차게 좁아진다.
10시 출근 새벽 2시 퇴근을 하던 시절, 내 삶에는 오로지 일만 있었다. 이외의 모든 만남, 취미 생활은 거의 없었고 오직 일을 쳐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3년간 일만 했더니 3년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 후로 코로나가 터졌고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서부터 삶이 많이 안정되었다. 일하는 것이나 벌이는 여전했지만 가족들과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었고 함께 산책도 할 수 있었다. 코로나는 모두의 인간관계를 좁혔지만 나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었고 그 시간이 좋았다. 그 시기가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집에서 일하던 나는 사업에 관해 공부를 같이 하던 사람들, 한 다리 건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삶을 접하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시야를 트이게 해주고 삶의 새로운 방식을 배울 수 있게 해준다. 세상에는 늘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놀랍도록 매력적이면서도 통찰력이 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같이 성장하는 듯했고 대화를 하면 몇 시간씩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았다.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힘을 얻었고 나 같은 존재의 삶도 충분히 괜찮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친구와는 대화는 대화 자체로 즐거웠고 이야기는 수다와 조언 사이를 넘나들었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실제로 했던 말은 안목을 넓히라는 것, 주변을 탐구하라는 것, 그리고 최대한 깊게 파라는 것 정도 밖에는 없었다. 다음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자신을 탐구하고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이 우선인 만큼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또 만날 수 있다는,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