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쓸 수 있는 능력

2017년 8월 15일

중고 책값을 주기 위해 털레털레 ㅎ의 와인바에 들이닥치니 ㅎ은 요리를 하고 있다. 오랜만에 보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듯 안부 대화가 오간다. ㅎ은 내가 전화로 미리 주문해둔 크림 파스타를 만들면서도 연신 이것저것 주변 얘기들을 떠들어 댄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그러니 저러니 하며 받아준다. 와인바에 변한 것은 없다. 사실 변하는 것은 마음 뿐이다. 마음의 계절이 바뀌는 것인데 계절에 따라 우리 마음도 함께 싱숭생숭 해지고 그렇지 않은가. 와인바는 그대로인데 ㅎ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일이 하기 싫은 듯 자기가 하고 싶은 다른 이야기들을 꺼낸다. 그것은 글쓰기. 글쓰면서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 나도다! 맞장구를 쳤다.

역시 매일매일 매장에 매여있는 것은 못할 노릇이다. 나는 9년을 매달려 있으니 혼이 비정상이지. ㅎ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이젠 글쓰며 사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돈은 어떻게 버나. 그 얘기로 저녁나절 한 시간을 얘기했다. 주제는 이리로 저리로 휩쓸려 다녔지만 먹고 산다는 희미한 주제의 불꽃은 우리 대화가 계속 흐를 수 있게 도와주었다. 글을 쓰며 돈을 버는 것은 어렵고 작가가 되는 것도 삶을 영위하는 정도로 벌려면 훨씬 어렵고, 그럴려면 유명해져야 하는데 유명해지는 것은 고사하고 무슨 주제를 가지고 한 시간 정도라도 이야기 할 수 있는지, 그런 주제가 나에게 있는지조차 나는 잘 모른다. 있어봤자 기타 잘 치는 법 정도.

혼자서 쏟아내는 글이 있는가 하면 남의 스토리에 얹혀 이야기 하는 글도 있다. 혼자서 글을 이끌어갈 힘이 없다면 남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빌어 그것을 확장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문장을 잘 쓰는 능력이라기 보다는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개념에 가깝다. 전체적인 맥락이나 구조등을 인지하지 않으면 논리적 헛점이 생길수도 있어서 완벽한 공략이 불가능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가지고 쓰는 글들이 그렇다. 사람들이 언제나 관심갖고 찾아보는 것 중에 하나가 영화이니 그것에 대해서 자신만의 식견이나 견해를 잘 피력하면 그것만큼 쉽게 인지도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정치, 영화, 연예인, 셀럽, 이슈들. 이런 것들은 이미 뉴스들이 다 하고 있다. 대표 케이스가 디스패치다. 역시 디스패치는 인지도 모으는 법을 이미 안다. 그렇게 하면 너도 나도 에불바리 세이 ‘자칭 작가’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연재하거나 책만 내면 명색이 작가니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글쓰기가 뭐 대순가. 생각하는 것이 문장의 꼴로 표현될 때 그것이 글쓰기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페북 스타들은 글을 잘 써도 너무 잘 쓴다고 ㅎ이 말한다. 나는 그 친구들이 젊다고 해도 구력이 적잖이 2~30년일텐데 그것과 너의 글을 비교하면 쓰나 얘기한다. 사실 나는 대학교 1학년때 국어와 작문 수업 D를 맞았다. 나의 정성스러운 레포트에도 교수님은 가혹했다. 늦게 냈으니까. 나는 그 후로 15년간 절필 선언을 한다. 쓴 적 없는 글을 쓰지 않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었으므로 이제 5년 정도 글을 써보고 있는 나에게도 역시 글 쓰는 것은 어렵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장보다는 역시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참신한 사고 프로세스를 이렇게 저렇게 요롷게 생각해낼 수 있는가가 더 궁금하다. 문장을 아름답게 쓰기 보다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관점을 정리하는가가 더 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사고의 과정이 글쓰기보다 앞선다. 그 생각이 정리되고 정제되어 글로 나오는 것이다. 지금 이 글도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키보드로 직행한 글이지만 숙고하고 정제된 글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냥 쓰자. 재지말고 닥치는대로, 매일 써라. 그냥 써. 쓰라고 제발. 연필이건 키보드건 가리지 말고 모든 군더더기를 버리고 그냥 쓴다. 그럴듯하게 완성할 생각 말고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고 그것을 사람들이 보도록 그냥 늘어놓고 좋아요 신경쓰지 말고 조회수 확인하지 말고. 이 과정을 거쳐서 생각이 정리되고 모이는 방법이 길러지니 내 글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에 두려워 하지 말고 그냥 올린 후 잊어버리게 되었다. 뭐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이제는 A4 한 장이라도 채울 수 있으니 결과를 바라지 말고 글을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