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ZEBRA 0.3mm 사프를 구입하고 가장 처음 한 일을 이슬아 수필집을 필사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사용하던 사프는 좋았지만 글씨가 작은 나에게 0.9mm는 너무 두꺼웠다. 가느다란 사프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자마자 곧바로 옷을 입고 나가서 사프와 사프 심을 사 왔다. 가늘다. 주삿바늘처럼 가늘다. 이 끝에서 나오는 샤프심이 부러지지 않고 예리하게 써진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특별한 장비를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노트에 글을 끄적여보니 기존의 0.9mm 사프로 쓴 글은 마치 매직으로 쓴 것처럼 굵어 보였다. 샤프 옆에는 Quality For Creativity라고 적혀 있다.
필사는 남의 글을 베껴 쓰는 행동이다. 글 쓰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필사를 소중히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연남동에 사무실이 있었을 때는 독립서점의 소식을 상당수 팔로우하고 있었으므로 SNS에는 필사 모임도 종종 올라오곤 했다.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만 전해 들었지 그것의 실상을 나는 몰랐다. 그럴 생각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다. 내 생각도 정리하기 바쁜데 남의 글을 따라쓰다니. 필사하는 사람들을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생각도 없었고 할 이유도 없었으므로 나는 내 삶에는 필사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필사의 내막이 궁금해서 시작하게 되었지만, 사실 유튜브를 보다가 필사를 통해 글쓰기 천재가 되었다는 사내의 주장을 의심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외로 쓰는 것 즐거웠고 수필을 읽는 마음도 즐거웠으므로 필사하는 과정이 힘들거나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두 번 베껴 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하루에 한 챕터씩 필사를 했고 몇 번의 챕터가 넘어간 후 조금의 변화가 생긴 것을 알았다. 필사할 때는 전혀 몰랐지만 프리 라이팅 노트에 내 글을 쓰던 어느 날, 필사할 때의 감각을 느꼈다. 내가 써야 할 글이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처럼 (이미) 그려져 있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조망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러고는 이내 사라졌지만.
글씨를 직접 쓰는 것은 꽤 느리다. 그래서 필사를 하면 눈으로 읽었을 때보다 훨씬 상세하게 문장을 뜯어볼 볼 수 있다. 이렇게 느리게 읽으면 단어에서 연상되는 장면들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는 분명 글자를 쓰고 있는데 장면을 보는 셈이다. 원작의 글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내 글은 충분히 수준 이하이지만, 그 느낌이 무엇인지는 조금 알 것 같았다.
필사를 하다보니 작가의 생각이 흐르는 방향도 관찰할 수 있었다. 글의 전개를 어떻게 하는지 조망할 수 있는 감각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이 사건에서 끝나버리면 보고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는 항상 그 너머로까지 뻗어 있었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궁금해서 글씨를 쓰는 손이 빨라진다. 이미 책은 다 읽었지만 필사를 하면 사진을 보는 것 같이 해상도가 높아지면서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감각들도 느끼게 된다. 그러니 그 뒷 이야기로 빨리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때때로 작가는 사소한 것에서 예리한 안목을 보였으며 나는 얕은 물이라고 생각했던 사건에서 깊이를 느꼈다. 글자를 쓰는 행위는 생각보다 더 고상하다.
글을 필사하다 보면 작가 감정에 더 많이 동화된다. 느리게 읽고 쓰면서 생각할 만한 여유가 생긴 탓인지, 아니면 쓰는 행위가 주체적이에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필사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의 문체를 훔치는 것 이상으로 내면적인 작업이다. 마치 내가 작가가 된 것처럼 눈으로 책을 보고 – 문장을 기억 해서 – 사프로 옮겨 적는 이 과정이 주체적인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필사는 작가의 글을 베끼는 작업이지만 사실은 작가가 글을 쓸 때 생각하는 프로세스와 글로 표현하는 과정까지, 글을 쓰는 모든 과정을 모사함으로 보다 작가적인 태도를 만나게 도와준다. 그러니 필사는 베껴 쓰는 그 이상으로 훌륭한 글쓰기 연습이다.
필사를 하면 생각하는 방식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작가가 어떤 과정으로 생각을 발상시키는지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며 재료를 활용하여 발전시키는 방식도 고유하다. 필사를 하면 작가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방식도 확장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생각하는 방식을 확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서 조금씩 성장하게 될 것이다. 생각하는 흐름을 바꾸는 것는 거대한 강물을 옆으로 트는 것과 같다. 이 대공사를 하는 과정이 바로 필사다.
필사는 남의 글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글로 옮겨 적는 행동이다. 베끼는 행동은 수동적이지만 글을 적는 것은 능동적이기에 필사는 작가가 주체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게 어떤 느낌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해준다. 그러니 글쓰기를 한다고 하면 필사는 글쓰기의 디테일을 말도 못 하게 높여준다. 말 그대로 생즉필사(生卽筆寫)인 것이다.
* 생즉필사(生卽筆寫) ‘살고자 한다면 필사하라.’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오’의 생즉필사(生卽必死)와는 한문 표기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