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데뷔무대

8-90년대 교회는 라이브 음악의 온실이었다. 그 시절에는 학생이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내가 아는 한 유일하게 밴드 음악을 볼 수 있는 곳은 가요톱텐에서였다. 당시 가요톱텐에서는 라이브로 반주를 하기도 했었다. 송골매가 나왔고 구창모는 열창을 했다. 티브이 속 세상은 내가 경험해본 적 없는 삶의 모습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기 때문에 현실같다기 보다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풀 밴드 음악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곳은 다름아닌 교회였다.

내가 다니던 교회는 교회에는 수원역 판 코리아(나이트 클럽)에서 베이스를 치던 청년부 형님도 있었는데 회심하고 난 후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철야 예배를 나가면 전도사님, 드럼 치는 고등학생 형, 베이스 치는 나이트 형, 그리고 건반을 치던 목사님 딸까지 풀 밴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나이트 형님을 제외한 반주자들은 사실 모두 고등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음악을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드럼은 정박으로 8비트 리듬을 치는데 건반은 셔플 리듬으로 반주를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들어도 이상했을 정도였는데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자기 반주 했다. 그래도 라이브 음악이 아닌가. 나는 매주 철야를 참석했다.

청소년 찬양 축제에서 기타를 치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그 일을 계기로 나에게 통기타를 한 대 사주셨다. 블루 버스트 색상의 드레드넛 통기타였다. 이제는 나도 사람들과 합을 맞춰서 밴드에서 통기타를 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것은 일생 일대의 기회. 하지만 새로 산 통기타가 조금은 성가셨다. 체구는 작은데 기타는 너무 컸으며 기타줄의 장력도 센 편이라 평소에 치던 기타와는 다르게 연주가 쉽지 않았다. 한 술 더 떠서 이걸 메고 서서 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집에서 스트랩을 메고 서보니 균형이 맞지 않아 볼품이 없었다. 자세도 안 나오고 치는 것도 어렵게 느껴졌지만 새 기타는 늘 옳지 않은가. 소리도 너무 좋았다. 나는 그 기타를 좋아했고 오래도록 쳤다. 

F#m의 주인공인 L형은 그룹의 리더였다. 이 밴드에는 다른 악기 없이 기타만 4대였다. L형은 일렉을 쳤고 나와 두 살 차이 형도 한 명 있었는데 나와 함께 통기타를 쳤다. 다른 한 명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좌식으로 앉는 지하 예배실 앞에 넷이 서서 연습을 시작했던 첫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사실, 기타 넷이 동시에 치는 상황은 조금 생경했다. 철야때는 모든 악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일렉 한대에 통기타만 세대였으니 이러한 조합을 본 적도 없었고 그렇게 하면 안 될 것만 같았지만 연습을 해보니 생각보다 괜찮았고 잘 맞았으며 꽤나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했다. 전도사님이 몇몇 곡에서 즉석으로 섹션을 넣어보자고 제안했는데 ‘짠~ 짜라잔!’하는 리듬을 중간에 한 두번 넣어보니 느낌이 더 고조되었다. 섹션은 서로의 실력이 미천한지라 처음에는 잘 맞지 않았지만 몇 번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맞춰지다 보니 통기타 네 대의 합은 정말이지 그럴듯 해졌다. 

모여서 연습을 하다보니 어느새 연습곡들은 거의 외워서 칠 수 있게 되었다. 섹션이 나오는 몇몇 군데, 혹은 어려운 부분은 좀 더 완벽하게 해야겠지만 복음성가라고 불리던 그 시절의 곡들은 코드가 1도 – 4도 – 5도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코드 몇 개만 알면 누구든 외워서 칠 수 있었다. 

한창 연습을 하는 도중에 옆에 있는 두 살 위 형을 보니, 악보에서 코드를 찾느라 중간에 연주를 멈추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코드를 잘 몰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그 형은 악보가 없으면 전혀 기타를 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형은 나보다 기타를 잘 쳤다. 주일 오후에 한가할 때는 교회에서 놀다가 형한테 기타도 배우곤 했다. 그러니 악보를 두고 헤매는 형의 모습이 생경했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대수롭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저 예배 반주만 충실히 잘 해보자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때 소름끼치도록 똑같은 사람을 하나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나의 아내.

아내는 교회에서 어린이 예배때 피아노 반주를 했다. 어느날은 평소와 동일하게 반주를 하고 있는데 헌금 시간이 되어 헌금송 악보를 찾아보니 악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3년이 넘도록 매주 똑같이 치는 헌금송이었는데 악보가 없어서 그 곡을 못 쳤다고 한다. “3년이면 모르긴 몰라도 150번은 넘게 쳤을텐데 그 짧은 곡을 못 외웠다는 것이 사실이냐. 실로 놀라운 일이로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아내에게 이야기 했지만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는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곡을 외우는 것은 일종의 재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나는 지금껏 곡을 외우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증거가 될 수 있다. 학교에서 암기 과목을 공부할 때는 연습장이 새까매지도록 글자로 써가면서 암기를 했는데, 노래를 외울때는 코드 진행을 이런식으로 외워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기타를 처음 배웠을 때도 노래가 이해가 되면 코드가 그냥 들릴 정도였으니 나는 어느정도는 음감을 타고 났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것은 상대음감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청소년 찬양 축제날이 다가왔다. 실전은 상상 이상이었는데, 많이 틀렸고 많이 이상했고 생각보다 다리가 너무 후들거렸다. 눈을 뜨고 있지만 악보가 잘 보이지 않았고 하마터면 충실히 연습했던 섹션도 틀릴뻔 했다. 다행히 거의 외울 정도로 연습한 덕분에 몇몇 곳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신나고 우쭐거리고 긴장되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피어났다. 찬양 시간은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끝나버렸다. 전도사님은 특유의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설교를 했고 찬양 축제는 성황리에 마무리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기타를 치는 학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