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고 이게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의 특징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잘 고쳐지지 않아 계속 그렇게 일을 하고 있다. 안 바뀐단 말야. 그래도 고쳐진 것이 있다면, 일을 할 때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악을 들으면 이내 정신이 홀랑 팔려서 기타를 들고 앉아 노래를 따라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직업병. 그러니 음악을 들으면 다른 일을 망칠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차로 출퇴근을 할 때는 라디오도 음악도 듣지 않았다. 일적으로 생각할 문제들을 가득 안고 달렸던 시절이었고 음악은 머릿속에 담아둔 업무 생각을 순식간에 뺏어갔다. 생각하는 시간까지도 컨트롤해야 하는 삭막한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생각에 몰입하다가 주변의 자극으로 인해 – 특히 음악 – 생각을 놓치게 되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집중하는 시기가 있으니 바로 책을 만드는 때이다. 평균 5~6개월 가량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지는 않지만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할애하여 원고를 작성한다. 산만한 걸 근성으로 버티며 원고에 집중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한 페이지도 만들기가 어렵다. 한 번에 하나씩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은 몹시 지루하고 괴롭고 피곤한 일이다. 책을 만드는 것은 결과물을 내야하는 일이기에 정신적 흐트러짐과 맞서 싸워야한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무슨 일 하느냐고 물으면 앞으로는 정의와 맞서 싸우는, 아니 나 자신과 싸우는 일을 한다고 말 할 참이다.
책은 인내의 결실이다. 글쓰기 자체가 워낙 오래 걸리다보니 그렇다. 한 페이지 쓰는데 하루, 혹은 이틀이 걸리기도 하고 운 좋으면 몇 시간만에 끝내기도 한다. 쓰면 끝인가. 수십 번을 읽으며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문장을 만들기 위해 새로 쓰기를 몇 번씩 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정성을 들여 완성된 것을 뭐라고 부를까. 이것을 초안이라고 한다. 이렇게 시간을 갈아 넣었음에도 이 글은 초안뿐이 안 된다. 원고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마치면 그때부터 교정의 연속이다. 전체의 흐름과 구조적 맥락을 살피며 수정을 한다.
이때도 심각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한다.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길게 만들어 넣었는데 챕터를 통째로 없애버리기도 하고, 지운 내용보다 더 많은 내용을 새로 만들어 넣기도 한다. 초안을 완성하는 것보다 내용 전체를 만지는 것이 더 오래 걸린다. 내가 쓴 글을 모두 읽어야 한다. 그것도 수 십 번에 걸쳐서.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한치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내용을 파악하는데만 굉장히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교정 원고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맥락이 맞는지 읽으면서 점검하는데만도 무지막지한 시간이 흘러간다. 고개를 들어보면 몇 시간이 흘러있다. 하지만 진행한 내용은 불과 몇 페이지. 이렇게 몇 달이 흘러간다.
나에게 집중력은 곧 생산성이며 실력이다. 평소의 나였다면 두 줄 쓰고 읽어보다가 ‘내는몬한다’하며 다른 일을 알아봤을 것이다. 책 만드는 일은 전혀 나답지 않았고 나와 맞서 사투를 벌여 이겨야만 비로소 한 발자국을 옮길 수 있었다. 다행인점은 이 일도 오래하다보면 조금씩 집중력있는 사람으로 바뀌어 간다는 점이다. 굉장히 협소한 실용서를 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을 쓰면서 구체성과 글과 문장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높아진다. 초안을 수십 번 훑어보면 내용을 체계적인 맥락으로 바라보는 구조적 안목이 생긴다. 일종의 성장인 셈이다. 이맛에 이 일을 멈출 수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의 가격은 세상에 없던 오리지널을 만들어낸 나와 맞서 싸운 값이며, 성장은 음악을 듣지 않는 투쟁으로 만들어낸 결실이다. – 근데 내가 만드는 책이 통기타 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