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때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

나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노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인생은 노트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된 시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삶의 기본기가 많이 모자란 사람이었기 때문에 생각을 조금만 허투루해도 많은 일이 꼬이거나 흐트러졌다. 매번 자숙과 다짐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수는 끝이 없었기 때문에 특단의 방법이 필요했다. 

지금 터지고 있는 일의 상황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찾기 위해서 하던 일을 폐기하고 새로 시작할 수는 없었다. 새로 시작한다고 해도 잘 될리가 없고 말이다. 그래서 진행되는 일을 어떻게든 처리하면서 개선점을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일의 맥락에 대한 나의 이해에 대한 서술을 시작했다. 머리속에서 생각만 할 때는 굉장히 빠르게 이것저것 생각이 들뜨기 때문에 생각을 하나로 모으기가 어렵고 방금전 생각도 쉽게 잊어버리는 등 생각을 제대로 해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노트에 생각나는대로 현재 상황과 사안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인지, 그때 내가 왜 이런 결정을 내가 내렸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한다. 그리고 그걸 고스란히 글로 써본다.

글로 쓰면 그 때부터 생각이 느려진다.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해보는 편이었는데 생각이 더 느려지면 좋을 것 같아서 연필로 노트에 생각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며 생각하는 것과 쓰지 않으며 생각하는 것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바로 생각의 속도다. 생각의 속도는 번개처럼 이쪽에서 저쪽으로 휘몰아치고 전혀 엉뚱한 것들이 튀어나오기도 하며 갈피를 잡지 못해서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 왜인지는 몰라도 생각하는 속도가 글자를 쓰는 속도에 맞춰 느려진다. 이것이 나는 너무 좋았다. 복잡했던 일 중에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었지만 어찌됐건 한 번에 한 가지의 생각밖에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중에서 한 가지만 선정하여 노트에 글자로 적어보았다.

프리미엄 회원이 된 사람이 느끼는 가치, 물건을 최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지. 언제나 우리가 관리를 해 주니까. 상태를 최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 이것은 연주에도 꽤 민감한 내용이니까 전문연주자들이 선호하지 않을까?

이렇게 평범하고 뻔한 것들을 글로 적다보면 의도치 않게 다음 스텝이 생각나기도 하고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곱씹게 되는 등 집중하는 사안에 대한 생각의 카테고리가 확장된다. 생각만 줄곧 해봤다면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을테지만 생각을 한줄씩 서술해 나가면서 나의 상황이 어떤지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현재의 상황에 대한 묘사들을 풍부하게 적어본다. 

여기에서 나는 굉장한 마음의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떠오른 생각 중 딱 하나를 차례대로 써 내려가며 현실을 파악하는 것 뿐인데 정리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해결책을 찾아낸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무엇이 나온 것도 아닌데 현재 상황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만으로도 굉장한 안정감을 갖게되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는 이렇게 생각을 확장하거나 진행할 수가 없다. 생각은 글쓰기보다 월등히 빠르고, 사안을 디테일하게 조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표면만 대충 훑게 된다. 다른 일을 동시에 하다보면 생각은 어느새 이리저리 혼란스러워 지면서 머리속은 난장판이 된다. 집요하게 디테일 속으로 들어갈수록 생각은 어렵고 힘들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생각하는 근육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생각을 풀어내어 하나씩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생각하는 능력이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의 내가 생각을 뛰어나게 잘 도출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지렁이에서 탈출할 인사이트를 글쓰기에서 얻었다는 것 뿐이다. 그러니 글쓰기는 문장을 잘 쓰는 일이 아닌 생각의 정리가 우선인 것이다. 글쓰기 실력은 생각하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서 동일한 사안을 다시 생각해내려 한다면 절대 예전과 동일한 컨디션으로 기억을 할 수 없다. 생각은 무조건 열화되고 사라진다. 그래서 글로적힌 생각을 다시 읽다보면 거기에서 과거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가진 채 바로 다음 생각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글쓰기는 오랜시간 생각을 유지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생각을 발전시키고 세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글쓰기가 곧 생각이다.

(2020년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