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 코드 14’는 제가 가장 처음 만들었던 책입니다. 올해 출간한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기획하고 인쇄하는데 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 원고를 수도 없이 갈아 엎었어요. 책의 구성은 결정된 것이 없으니 일단 아무렇게나 초안을 하나 만들었고, 그것을 보자 저는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말도 안 되는 구성이었어요. 진행 과정도 실패, 난이도 조절도 실패, 디자인도 실패, 문장도 실패, 무엇보다 준비했던 제목과 실제로 만든 내용의 초점이 서로 미묘하게 다르더군요.
그때의 막연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걸 언제 다 고치고 앉아있지?라는 생각이 가득했어요. 초안을 쓰는데만 몇 개월이 걸렸는데, 이걸 다시 고치려면 또 몇 개월이 걸릴 판이었거든요. 다른 할 일도 너무 많았기 때문에 과연 감당이 가능할지 제 자신에 대해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다보니까 또 되기는 하더라고요. 내용을 덜어내고 새로 보강해 나가면서 두 번째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여전히 내놓기 부끄러운 자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맥락은 찾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진행하는 과정이 조금은 매끄러워 졌고 맥락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만들었지만 막상 처음 만들 때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나중에 둘러보면서 내가 여기는 왜 이렇게 만들었지? 의구심이 일어나는 챕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는 닥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습니다. 그렇게 한 열 번가량 보면서 고쳤던 것 같습니다. 그제서야 조금 부끄럽지만 내놔도 괜찮을 것 같은 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이래서 2년 걸렸어요.
지금 에세이를 쓰면서 이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에세이는 기존의 교재와는 레벨 자체가 다릅니다. 아무렇게나 설명하는 교재와는 다르게 에세이는 최소한 문학의 포맷은 갖춰야 하니까요. 글의 맥락을 만들고 사람들을 보다 잘 이해시키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하며 쓰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200페이지 정도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오케이 다시 처음부터 보자. 두 번째 다 보고 나니까 270페이지 정도 글이 늘었더라고요. 맥락을 고려해서 쓰다보니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고쳐쓰고나니 300페이지가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글자만 봐도 너무 어지러워서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잠 깐 쉬고 지금은 네 번째로 고쳐쓰고 있습니다. 이제 120페이지 조금 넘었어요. 그런데 조금 눈이 틔이는 기분이 듭니다. 세 번이나 고쳐썼는데 여전히 쓸데 없는 글이 너무 많고 맥락에 벗어나는 글도 몇 문단씩 나왔습니다. 모두 삭제했어요. 삭제, 삭제, 이동, 삭제를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투박한 진행도 많이 매끄럽게 바꾸고 있습니다. 논리상 있어야 할 설명을 훅 뛰어넘는 경우도 많고 그런 부분을 하나하나 AI에게 지적질 당하며 보강해 나가고 있습니다.
글을 보면서 정말 놀랍기도 했고 어처구니 없기도 했던 것은, 너무 억지스러운 문장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 문단이 무심하게 통째로 들어와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뭘까. 왜 그 때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걸까. 하도 내 글이 쓰레기라서 몰랐는데 조금 정리하고 나니 이제서야 쓰레기와 아닌 것이 구분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써놓은 글을 읽어보면 눈을 감고 싶을 지경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어휴. 뭉텅이로 비워놓고 다시 글을 씁니다.
앞뒤 문단은 완성되어 있는데 중간을 다시 써야하면 맥락이 이어지도록 요리조리 잘 맞춰야 합니다. 근데 글쓰기 초보가 가당키나 합니까. 너무 고된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하여튼, 이제서야 뭔가 각이 좀 잡혔다는 생각이 들게 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마무리를 지으면 전체 분량은 거의 결정될 듯 합니다. 에세이가 지향하는 방향성도 정렬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 섯번 째 교정에서는 문장의 디테일을 살펴볼겁니다. 저는 문장가가 아니기 때문에 수려한 문장을 쓰지 못합니다. 그저 있는 사실을 담백하게 적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계속 고쳐쓰다보면 어느새 완성은 되겠지요.
내가 쓴 글을 수천 번 읽고 쓰다보니 그만큼 글에 대한 안목도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교정을 거듭할수록 제 글이 하찮아 보이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적어도 올해 안에는 끝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지만, 과연 이 교정의 끝이 올해 안에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