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책, 휴식

제주도에 내려와 방바닥에 누워 책을 읽고있자니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듭니다. 누가봐도 한량의 모습 그대로인데 그와중에도 저는 숙소 근처 만춘서점에 들러 책을 세 권이나 사들였습니다. 제주도에 올 때는 두 권을 들고왔는데 두 권 다 일본 작가의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수필과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집, 그리고 하라켄야의 ’백‘을 구입했습니다. 밤 늦은 이 시간에 책을 방바닥에 펼쳐놓고 생각해보니 죄다 일본 서적들이 가방에 들어있었네요. 그렇다고 제가 한국 소설이나 수필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훨씬 더 많이 읽고 있으며 깊이 애정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책을 고른다하면 99% 확정적으로 마케팅이나 브랜딩 책을 골랐습니다. 새로나온 책이 없는지 눈에 불을 키며 살피며 서점의 파수꾼이 된 것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서가 사이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런류의 책들이 저의 삶에 영향을 덜 미치게 되는 시기가 되자, 글을 쓰는 것, 다시말해 사람에 대해 읽고 쓰는 수필에 조금씩 눈이 갔습니다. 여전히 저의 최애 수필집은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입니다. 다들 한번씩 읽어보셨으면 좋겠구요. 그러면서 소설도 조금씩 읽게 되었습니다.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은 2022년에 구입한 후 줄곧 서가에 꽂혀있었지만 이번에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은 후 제주도에 내려와 어제 몽땅 읽어버렸습니다. 언제 읽을까, 언제가 되어야 이 책이 눈에 들어올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나 봅니다. 때가 되니 읽게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한마디로 쓰라는 글은 안 쓰고 책만 죽어라 읽는중인데, 지금은 온통 여기에 빠져있습니다. 다음에 뭐 또 읽을 거 없나 찾고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읽을 책은 많습니다. 리디북스에 쌓여있는 책만 500여권은 되니까요. 이 역시도 어찌어찌 모으게 되었습니다만 지금껏 손이 안 가서 안 읽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마케팅 브랜딩에 빠져 있으면 실용서만 들여다보잖아요. 사람 냄새가 안나더라고요. 브랜딩의 본질은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것인데 그걸 너무나 논리적, 이론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면 그게 과연일이 되는걸까요. 저는 사십 중반에라도 소설을 잡게 된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이나 수필같은 문학만큼 사람에 대한 이해할 수 있는 장르는 아마 또 없을 겁니다. 이번 제주행이 독서의 좋은 전환점이 되는 것 같아 저에게는 무척 중요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내일은 제주국립박물관을 가볼 생각입니다. 입장료가 무료거든요. (한량노릇 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