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의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에는 악성 림프종을 진단받은 그가 경험했던 ‘가장 깊었던 밤’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고통과 두려움에 몸부림치던 그는 그날 가족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자신을 한탄한다. 그리고 그 밤을 홀로 이겨내는 동안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 자신을 두고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고 말한다. ‘살고 싶다는 말’은 그의 처지로 볼 때 서툰 농담이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살아날 가능성이 없으니 농이라도 던져 그 길고 긴 밤을 혼자 견뎌내며 동이 트는 아침까지 삶이 이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죽음을 앞둬본 적이 없던 나는 그 감정을 알 길이 없었다. 단지 글자에서 느껴지는 먹먹함을 어루만질 뿐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무얼 이야기하는지는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그처럼 닿을 수 없는 것에 ‘놀고 싶다’는 농담을 던져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일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영상을 편집하며 고단함을 이겨내도, 나는 내일 아침 또다시 이만큼의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시지프스의 형벌을 받은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몇 년을 보내는 동안 나도 닿을 수 없는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놀고 싶다는 말은 틀린 표현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더 적절했을 것이다. 나의 복잡한 마음의 상태를 표현할 길이 없어 그저 ‘놀고 싶다’라고 말을 했다. 영상을 만들지 않아도 되고, 기타 레슨을 하지 않아도 되는 동시에 그 어떠한 의무나 제약도 없어서, 그저 나 하나의 몸뚱어리만으로 자유롭고 싶은 생각이 놀고 싶다는 외침으로 표현되던 시절이었다. 

하던 사업을 막 정리하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내가 시작한 사업을 직원들에게 넘겨주는 계약서를 작성했을 때 나는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적성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탈출하고 싶었던 마음과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삶을 이어나갈지 사이에서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큰 대출이 여러 개 있었고 그걸 갚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세워두지 않았지만 나는 사업을 그만두고 내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머릿속에는 온통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연남동 사무실로 출근해서 11시 30분에 점심을 먹고 경의선 숲길을 산책했다. 공원을 크게 한 바퀴, 혹은 두 바퀴 정도 걸었다. 그러다가 공원의 맨 끝자락에 닿으면 나는 내가 항상 앉는 기다란 벤치에 앉아 30분이고 1시간이고 시간을 보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개를 보았다. 단풍나무가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천천히 변하는 장면을 몇 달에 걸쳐 지켜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생각은 이리저리 휘날리도록 두었다. 눈앞에 닥친 대출금과 밀린 공과금, 그리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 일, 일. 레슨은 오늘 몇 시에 있더라, 책 만들 돈을 어떻게 만들지, 내일 유튜브에 영상 하나 올려야겠다, 전기 요금 밀렸어. 잡다한 생각들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나는 그 생각에 딸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만약 그것 중 어느 하나에라도 휩쓸린다면, 나는 그 생각에 빠져 걷잡을 수 없이 휘둘렸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아우성이 다 끝날 때까지 내버려둘뿐이었다. 제풀에 꺾여 흐느적거리고 축 늘어질 즈음이 되었을 때, 나는 높게 솟은 은행나무 그늘 아래 반듯한 흙 길을 걸어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새벽까지 3인분의 일을 혼자서 했다. 

주어진 일을 하고, 앞날을 바꿀만한 일을 계속 만들어내며 나는 나의 처한 상황을 모면하려 노력했다. 힘들다, 슬프다, 우울하다와 같은 생각이 나를 삼키지 못하도록 하는데 산책만큼 효과적인 일은 없었다. 나는 감정적이지 않도록 늘 정신을 가다듬었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했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냉정함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내가 만들어낸 실패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커다란 구멍을 혼자 메꾸느라 나는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일하는데 사용했다. 레슨을 하고, 유튜브를 하고, 판매할 교재를 만들고, 유료 동영상 강좌를 만들었다. 점심을 먹고 산책하는 시간이 아니라면 나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을 멈추지 않았다. 

대출금이 돌아오는 한 달은 너무 금방 다가와 나는 매일처럼 세밀한 계획을 세워 수입과 지출을 관리했다. 들어오는 수익으로 이번엔 여기, 다음엔 저기를 절묘하게 메꾸었지만 통장은 늘 구멍 나 있었다. 머리에 김이 올라올 정도로 일을 하다가도 열한시 반이 되면 나는 약속된 행동을 하듯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먹으러 나갔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밥도 잘 먹어야 하는 법이다. 20분을 걷고 20분을 먹은 후 다시 20분을 걸어 연남동으로 돌아오면 나는 구석진 곳의 벤치에 앉기 위해 한 시간 산책을 했다.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길을 나서도 산책을 시작하면 더 이상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걸으면, 한 걸음을 쌓지 않고는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내 발로 한 발 한 발 나아가지 않으면 목적한 곳까지 도달할 수 없다는 진실도 목격한다.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를 일들을 한 걸음씩 만들어 나갔다. 놀고 싶다는 농담을 던진 그 새벽 언젠가, 나는 지겨움과 까마득함을 느끼면서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일에만 집중하고 그게 끝나면 그다음 일로 눈을 돌렸다. 

2019년 12월 31일, 나는 모든 레슨을 종료하고 집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모든 업무를 재택으로 바꾸었다. 많은 일이 마무리되어 있었고 너무 커서 엄두가 나지 않았던 대출도 몹시 작아져 있었다. 나는 이제는 쫓기듯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게까지 마음이 급하지는 않았으며, 나만의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즐겁게 할 여력이 생겼다고 느꼈다. 가장 깊었던 밤을 지나 이제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