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학원생활
수원 남문은 수원에서 가장 큰 번화가(였)다. 수원성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하지만 남문에는 남문시장과 지동시장 등 큰 시장이 몇 개나 이어져있을 만큼 거대한 상권이다. 나는 가끔 어머니와 옷을 사거나 먹을 것을 사러 남문에 오고는 했다. 남문은 남문을 가운데로…
수원 남문은 수원에서 가장 큰 번화가(였)다. 수원성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하지만 남문에는 남문시장과 지동시장 등 큰 시장이 몇 개나 이어져있을 만큼 거대한 상권이다. 나는 가끔 어머니와 옷을 사거나 먹을 것을 사러 남문에 오고는 했다. 남문은 남문을 가운데로…
“저는 은퇴한 사람처럼 조금씩 일하면서 살고 싶어요.” 오랜만에 만난 이뜨레는 그다운 이야기를 했다. 최근의 삶을 돌아본다면 나 역시도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은 일종의 환타지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삶의 99%가 되는 일이 흔하기…
예전에 쓰던 글은 홈페이지로 옮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브런치와 메모장에 가득한 생각들 중 몇 개는 옮겨두었지만 이젠 그러지 말자 다짐하는 거다. 삶의 최전선에서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이전의 글은 더욱 벌거숭이 같다. 몇년 사이 생각도 무르익어가고…
오늘은 강이님과의 점심 약속이 있어서 전철을 타고 서강대로 향했습니다. 가는 동안에는 다자이오사무의 에세이를 읽었는데요. 읽다보니 각주에서 놀라운 장면을 발견했습니다. 몇몇 작품들은 다자이가 말로 불러주면 아내가 그걸 받아 적는 구술방식으로 썼다는 겁니다. 저는 머리가 띵 해서…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는 사우디에서 일을 하고 오셨다. 한국에 방문하실 때마다 선물을 사 오셨는데 작은 병에 담긴 이브생로랑 향수 세트도 있었고 (분명 어머니 선물), 미 취학 아동을 위한 방바닥을 돌아다니는 비행기 장난감도 있었다. (분명…
8-90년대 교회는 라이브 음악의 온실이었다. 그 시절에는 학생이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내가 아는 한 유일하게 밴드 음악을 볼 수 있는 곳은 가요톱텐에서였다. 당시 가요톱텐에서는 라이브로 반주를 하기도 했었다. 송골매가 나왔고…
… 직장을 다니다가 사업을 하기 위해 사회로 나왔을 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니까. 보이는 게 없고 안목도 없으니까 그야말로 황무지에 서 있는 듯했다. 그럴 땐 방법이 없었다. 그냥 경험해 보는…
노방전도라는 게 있다. 길거리에서 예수님을 전도하는 일을 말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인도 가장자리에 서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8-90년대에는 주일날 오전 예배가 끝나면 교회 주변을 다니며 전도를 하는 교회들이 많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대학에 다닐 때는 홈페이지 만드는 일을 했다. 홈페이지 만드는 방법을 군대에서 익혀 제대한 후 개인 홈페이지와 학교 전산실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 후 학교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홈페이지 제작을 요청해왔고 나는 건단 4-50만 원을 받고 홈페이지를…
통기타 하면 7080인 시절이 있었다. 나는 78년에 태어났고 80년대 음악을 듣고 자랐으며 9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200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7080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7080 음악은 몰랐다. ‘내 사랑 내 곁에’가 100만 장 넘게 팔려 대…